서평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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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기독교역사 속에서 바울과 칼빈을 연결하는 지점에 어거스틴이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이야기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만큼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역사 가운데 중요한 인물로 지목된다. 사람들은 그를 흔히 은총의 박사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은혜교리를 체계화하였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는 라틴 기독교 신학을 체계화했고, 중세 천년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했으며, 종교개혁의 이념적 원류를 제공한 점에 있어서 중세에 천사 박사라고 불린 토마스 아퀴나스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평가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로서의 삶을 살다가 죽기 직전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10살 무렵 마다우라에서 문법과 고전학문을 배우고 370년경부터 수사학을 배웠고, 얼마 후 고향인 타가스테에 문법학교를 세워 수사학 교사로 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생 동안 단 한 명의 정부가 있었는데 17살 때부터 동거를 하면서 373년에 자신의 아들인 아데오다투스를 낳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마니교에 빠져 9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마니교의 유명한 감독이었던 파우스투스와의 만남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니교 교리에 대한 의문들을 풀어가길 원했으나, 그의 학문적인 능력의 부족함을 보고 마니교에 대해 실망을 경험하게 되었다. 또한 로마에서 수사학을 가르쳤지만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마니교와 완전히 결별을 한 후로 잠시 회의주의와 신플라톤주의에 빠지기도 했으나,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를 만나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영접하게 되었다. 그 후 세례를 받고 히포에서 감독과 주교로서의 삶을 살면서 여러 책을 저술했는데, 대표작들이 『고백록』, 『세레에 대하여』, 『신국론』 등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의 마지막 사상가이자, 동시에 첫 중세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과 이성에 대해, 악의 문제, 하나님의 은총과 예정, 삼위일체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다. 그러나 그가 가졌던 교회관과 성례관은 카톨릭적인 사상에 기초하였기에 로마 카톨릭의 교리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한 그가 가졌던 국가관에서 특별히 이단 투쟁에 있어 국가의 권력으로 교회를 압박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이야기하여 훗날 위험한 유산으로 남기게 되었다. 이는 중세의 이단자 색출과 종교재판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 루터의 농민탄압과 칼빈의 세르베르투스 처형 지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부정적인 영향도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저서와 신학은 물론 그의 정신까지 기독교 역사와 사상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을 세례 받은지 12년 만에, 히포의 주교가 된지 3년 뒤인 397년에 저술하였다. 이 책은 총 13권으로 구성되어있다. 1~9권까지의 내용은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하여 387년 회심할 때까지의 인생을 놀라울 정도로 낱낱이 기록하면서 자신의 죄인된 모습들을 빠짐없이 고백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10~13권은 회심 이후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높여드리는 장문의 기도로 구성되어있다.
이 13권의 책들을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면, 1권은 15세 때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데, 학문의 기초를 쌓아가는 일에 대한 열정보다 쾌락과 악을 행하는 것에 자신의 삶을 보낸 것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 어른들이 낱말을 외우도록 가르치지 않았고 어른들의 대화를 통해서 배움을 이야기하면서 딱딱한 외국어였던 헬라어 배우기를 꺼려하고 라틴어를 일상 생활의 대화를 들음으로서 배우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로운 호기심이 공포로 위협하는 훈련보다 학습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권에서는 사춘기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볼 때 학업을 포기한테 정욕적인 쾌락에 빠져있음을 이야기하면서 고백하기를 신체적 변화가 나타날 때쯤 자신의 어머니께서 자신에게 간음하지 말라, 무엇보다 다른 이의 아내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 말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인 것도 모르고 단순히 낯간지러운 여인의 말로만 이해하여 어머니의 말씀을 저버리고 오히려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이 파렴치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칭찬을 듣기 위해 더욱 파렴치한 행동을 하였음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