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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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평 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대건이라 제목만 보고 무슨 일을 하였던 분인가 생각 해 보았다. 나라를 지킨 위인 일수도 있고 아니면 청렴결백한 정치인 이였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친구 한테 물어 보았을 때도 누군지 잘 모른다고 했다. 학교 다니면서 배웠을 수도 있으나 생각은 나지 않는다.
이 책(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을 읽어 보며 김대건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저자의 생각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김대건은 나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나라 천주교에 한 획을 근 역사적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천주교는 수많은 박해와 탄압을 이겨 내며 조선이라는 나라에 뿌리를 내리려 하였다. 김대건은 당시 유일한 한국인 신부로서 천주교회의 추앙을 받는 인물 이었다.
천주교는 지금도 나에겐 생소한 종교다.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로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던 제자들인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법통을 오늘날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에 우리 나라는 국가와 사회의 이념적 근본을 유교에 두고 있었다. 유교 사상과 그 실천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의 바탕이었다. 따라서 유교에 회의를 품는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학파 학자들은 중국을 통하여 전래된 서적과 함께 접하게 된 새로운 종교, 곧 천주교의 가르침에 빠져 들었던 겄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성장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유교 사상에 젖어 있던 당시의 지배층은 천주교 신자들을 동양 윤리의 이단자이며, 모든 악의 전형으로 몰아 온갖 박해를 하였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 100여 년 동안 네 번에 걸친 커다란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이런 가운데서도 선교사 영입과 성직자 배출을 위하여 힘쓰던 당시 조선 천주교회는, 1845년 김대건(안드레아)이 중국 상하이 금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최초의 조선인 사제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는 귀국하여 일 년도 채 안 된 이듬해에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김대건은 그의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의 신앙을 지닌 집에서 태어났다.
주변 환경이 김대건을 천주교의 신앙심을 가지게 하고 또 신부가 되게 강요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의지로 천주교의 참된 가르침과 끌림에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 해도 아깝지 않은 그 믿음에 그는 천주교를 택했다.
나였으면 자신의 증조부와 작은할아버지를 죽게하고 가문을 몰락의 길로, 도피의 길로 내몬 천주교를 증오하고 원망하며 또 멀리 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건은 그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