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현상의 이해 성스러움의 의미‘피조물적 감정’ 누멘적 대상에 대한 느낌의 주관적 반영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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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교현상의 이해 성스러움의 의미‘피조물적 감정’ 누멘적 대상에 대한 느낌의 주관적 반영으로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여기서 우리는 강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순수한 종교적 흥분의 순간에 대하여 숙고해 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엄숙한 예배의 감동과 같은 영혼의 상태들을 고찰하고 분석함에 있어서 가능한 한 정확하게 우리가 예컨대 어떤 선한 행위를 볼 때 느끼는 윤리적 고양의 상태들과는 공유하고 있지 않는 요소에, 그리고 감정의 내용상 그들 안에서만 특별히 발견되는 요소에 주목하기를 촉구한다.
슐라이마허는 특이한 체험 가운데서 특히 주의할 만한 요소 하나를 포착해 냈다. 그것을 ‘의존성’의 감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중요한 발견은 두 가지 면에서 비판을 받을 점이 있다.
첫째로, 그가 여기서 본래 의미하는바 의존성의 감정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연적’ 의미에서의 의존감정이 아니다. 그는 경건한 의존성의 감정과 다른 의존적 감정들과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그 감정을 의존성의 감정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사실 자체에 대한 단지 하나의 유추에 관여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슐라이어마허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옷토는 예를 들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요소를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8장 27절에서 소돔 사람들의 운명에 대하여 하느님과 감히 말하고자 할 때 그는 고하기를, “먼지와 잿더미와 같은 제가 감히 당신께 말하여 하나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고백적인 ‘의존성의 감정’을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모든 자연적인 의존성의 감정들을 훨씬 능가하는, 그리고 그들과는 질적으로 틀린 감정인 것이다. 이것을 옷토는 피조물적 감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는 자를 대할 때 자신의 ‘무’(無) 속으로 함몰되고 사라져 버리는 피조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슐라이어마허의 규정이 갖고 있는 두 번째 결함은 그가 의존의 감정, 혹은 옷토가 말하고 있는 대로 피조물적 감정을 통하여 종교적 감정 그 자체의 본래적 내용을 규정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종교적 감정이란 제일차적으로 하나의 자기감정, 곧 나 자신의 어떤 독특한 피결정성, 즉 나의 의존성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따라서 슐라이어마허에 의할 것 같으면 이러한 자기 감정의 외부적 원인을 생각해 보는 간접적 추리에 의해서야 비로소 신 자체에 부딪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의 심리적 사실에 어긋나는 것이다. ‘피조물적 감정’ 이란 오히려 주관에 나타나는 하나의 수반적 요소 내지 결과로서, 틀림없이 내 밖에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대상과 일차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어떤 다른 감정적 요소(두려움)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대상이야말로 곧 누멘적 대상인 것이다.
제4장 두려운 신비
(누멘적인 것의 요소 Ⅱ)
누멘적인 것은 그 자체가 개념들로는 설명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그것이 체험자의 마음 가운데 불러일으키는 특이한 감정적 반응을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 구원의 믿음, 신뢰나 사랑 이상의 무엇으로서, 이러한 부차적인 것들과는 전혀 별도로 우리 안에서 때때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사로잡는데, 그것은 곧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 혹은 무서운 비밀의 감정이다.
㉠ ‘두려움’(전율)의 요소
이 체험적 사실의 긍정적 성격에 대하여 무엇인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우선 부가어 ‘두려움’(trementum)이라는 말이다. 전율이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나의 ‘자연적’감정인 공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율은 그것과는 전적으로 종류가 다른 어떤 감정적 반응을 가리키는 지극히 근사한, 그러면서도 다만 하나의 유추적 성격 이상을 지니지 않는 이름으로서 사용될 수 있다. 이 특유의 감정은 실로 공포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통하여 유추적으로 암시될 수 있으나 그래도 무서워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다. 즉 여기서 ‘두려움’이란 ‘종교적 공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의 전 단계는 ‘귀신’에 대한 공포와 그것의 이상한 타락인 ‘유령에 대한 공포’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어떤 켕기는 것(uncanny)에 대한 느낌 가운데서 종교적 두려움은 처음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누멘에 있어서 누멘적 전율을 자아내는 요소를 가리키는 누멘의 한 속성이 있는데 그것은 곧 야훼의 진노라는 말로서 신약 성서에서는 신의 진노로서 다시 나타난다. 이것은 오히려 전적으로 비자연적인, 즉 누멘적인 진노이며, 도덕적 실수에 대한 상벌과 같은 신의 정의라는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요소로써 채워짐으로 해서 합리화되는 것이다.
㉡ 압도성(위압성)의 요소
‘두려움’을 설명하기 위해 또 하나의 필요한 요소는 다름아닌 ‘힘’, ‘위력’, ‘절대적 압도성’ 즉 ‘위압성’(majestas)이다. 이 요소의 관계 속에서, 그것의 그림자 혹은 주관적인 반응으로서 앞에서 언급한 ‘피조물적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먼지와 잿더미같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분명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말하자면 종교적 ‘겸손’의 감정을 이루고 있는 누멘적 원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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