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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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북한 군부는 북한체제 변화의 핵심변수이자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코드이며, 체제 내부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다고 인식되고 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군대를 최우선시하고, 군대를 정치의 전면에 내세운다고 하며 이런 인식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 책은 인민군의 정치적 역할의 최대치와 그 한계를 밝히고자 한다.
2. 사회주의 체제와 군대의 정치적 역할
사회주의 군대의 정치적 역할은 헌팅턴이 일반 이론화하였다. 이 후 당-군이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갈등모델, 당-군의 관계가 조화, 정치적 공생 관계라는 제도화모델, 당-군이 갈등과 조화 사이 다양한 위치에 있다는 참여모델이 있다. 이는 모두 소련을 대상으로 추한 것으로, 일반화해 설명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대안 모델로 당-군 관계가 변혁기, 공고화, 체제유지 단계로 변화하는 발전모델, 당-군의 갈등이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는 상황모델이 있다. 당-군 관계를 연합형, 공생형, 융합형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각 사회주의 체제가 처한 구체적 조건이 다양해 일반이론 구축이 어렵다.
당-국가 체제에서 군대의 역할과 위상은 첫째, 당이 곧 주권자임을 가능하게 하는 당의 헤게모니로, 당은 초지배정당으로 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당-국가 체제’이다. 둘째, 당의 일부로서 군대로 당과 군은 당내 군사조직 및 군대내 당조적 등 상호 죽복되는 조직체계로 혼합되어 있다. 셋째, 군대의 정치화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군의 정치참여가 정상적인 현상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넷째, 군대의 제한적 자율성으로 군이 어느 부문에서 자율성을 갖지만 이는 당의 통제 하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북한 군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국가 체제의 일반적 성격과 북한의 특수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3. 북한 당-군 관계의 역사적 배경과 변화
북한은 소련에 의해 탄생했고 무력조직이 정권수립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지만, 북한 정권수립 이전 소규모 게릴라 부대의 역할이 정권수립 이후 정치적 이유로 북한 정권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글은 당-군 관계의 기초가 해방 이후 정치 파벌 경쟁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과정은 군대가 당의 도구로 정련되는 과정이다.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당시 조선인민군을 특정 정파의 군대가 아닌 ‘인민의 군대’로 규정했다. 북조선노동당이 군대를 당에서 분리한 것은 통일전선을 추구하던 당시 정치적 조건 때문이었다. 초기부터 김일성의 만주파는 군대에서 많은 세력을 확보한 쪽이었고 표면적으로는 당-군이 분리되었으나 인민의 군대에서 당의 군대로의 전환이 언제라도 가능한 내부적 준비가 되어있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당과 군이 공식적, 제도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민의 군대’와 ‘당의 군대’가 혼용되었는데 군대의 성격에 관한 논란은 파벌간 경쟁의 한 표현이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은 만주파에게 파벌 경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었고 군대와 당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 후 군대의 모든 책임간부가 당위원회에서 소속되어 당의 통제를 받도록 했다. 1960년대 소련,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기고 1962년 “국방에서의 자위 원칙”을 발표했다. ‘김창봉허봉학 사건’은 당에 의한 군통제를 강화하도록 했다. 1972년 사회주의 헌법에서 최고 군사지도기관으로 ‘국방위원회’를 신설해 인민군에 대한 국가지도체계를 마련했다. 이 결과 정치 군관이 지휘관을 능가하는 전환이 일어났다.
1974년 채택한 10대 원칙은 당조직 지도부에 권력을 집중했으며 군대 내 보위기구를 확대 개편해 인민군을 후계체제 구축에 가장 먼저 동원했다. 1970년대 군 내부에 김정일 후계체제의 기초를 다졌다면 1980년대는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로서 군대를 직접 장악하는 시기이다. 경제난이 심화되며 당 헤게모니가 약화되었으나 선군정치에 따라 인민군의 역할 증대 및 확장을 전 인민적으로 수용하도록 1992년 ‘군민일치 운동’을 벌였다. 2000년 ‘선군정치 시대’가 개막되어 김정일의 힘의 원천이 군력임을 강조했다. 이 때, 인민군의 역할은 강조하나 인민군의 자율적인 정치적 영향력 증대를 용인하거나, 군대우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4. 조선인민군 역할과 특징: 지속과 변화
인민군대는 본질상 당의 혁명적 무장력일 수밖에 없고 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서 당조직을 갖춘 인민군이 가장 중시해야 할 사업은 정치 사상사업이다. 김일성은 정치사업에 따라 부대의 전투성과가 결정된다고 보았고, 김정일은 이를 현실에 맞게 정교화했다. 군사와 관련한 김정일의 모든 저작은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지도와 통제를 일관되게 거론하고 있다.
1958년 초 군 내 사상적 단속이 개시되고 인민군은 김일성 항일유격대의 계승자로, 창군이념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정신으로 단일화되었다. 항일유격대의 계승자가 되었다는 것은 인민군을 고도로 정치화하고 인민군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는 배경이 되었다. 항일유격대는 혁명전통의 담지자로서, 공산주의자의 전형으로서 대중 속에 각인되었고 인민은 유격대의 공산주의적 풍모를 체득해 현실에서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했으며 사회의 군사화가 진행되었다. 1960년대 채택된 4대 군사노선은 군사화의 실천적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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