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후 북한의 경제정치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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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북한의 경제정치상황~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전후 경제복구와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성되고 김일성 중심의 권력체제가 확립되는 시기이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면 사회주의제도가 완성되고 도시와 농촌의 계급관계도 이전보다 훨씬 단순화된다. 이 시기 북한은 자립적 경제건설노선을 제기하고, 중공업의 우선적 성장과 경공업농업의 동시발전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공업화 노선을 채택한다. 경제건설 추진과정에서 그 노선에 대한 지도층 내부의 논쟁은 김일성 중심의 지도체제에 대한 당권 도전의 성격을 띠는데, 오히려 ‘반종파투쟁’을 거치면서 김일성과 항일유격대 출신 인사들 중심의 권력체제가 확립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영향을 극복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그와 함께 북한 사회주의의 특성을 대변하는 ‘주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다.
1. 경 제
(1) 전후 경제복구노선과 사회주의적 개조.
1) 전후 경제복구 및 사회주의건설 노선
전후 경제복구 및 사회주의건설 노선을 둘러싸고 로동당 지도부 내부에서 ‘자립적 경제건설의 토대가 될 중공업 건설을 우선할 것이냐, 아니면 주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경공업 건설을 우선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상황에서 제한된 자원을 어느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로, 친중파친소파는 후자를 주장하며, 또 노동협동화의 속도를 늦출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거부하고, 1953년 8월 제6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중공업의 우선적 성장을 보장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노선”을 기본노선으로 하며, “국민경제의 각 부문에서 전전의 수준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인민경제 발전 3개년계획’(54-56)을 채택하였다.
2) 농 업 협 동 화
북한의 ‘농업의 집단화’는 1953년에 시작되어 1958년 8월에는 모든 농가를 협동조합에 가입시킴으로써 일단의 완성을 보았다.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급속한 협동화가 가능했던 것은, 전쟁 이후 농업의 생산력적 기반이 붕괴되었던 데다 국가와 로동당의 강제와 원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농업협동화의 진전과 함께 농업의 물질적기술적 토대도 강화되었다.
해방 직후의 토지개혁을 아래로부터의 제1의 농업혁명이라 한다면, 농업협동화는 위로부터의 제2의 농업혁명으로 농민의 집단적 소유제를 기초로 한 사회주의적인 집단적 대경영으로 이행시키는 변혁이다.
3) 개인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
개인상공업 개조란 도시수공업자와 소상인 및 자본주의적 상공업자들의 경영을 사회주의적 경영으로 전환시키며 그들을 사회주의 근로자로 개조하는 사회경제적 변혁을 말한다. 개인이 경영하던 소규모의 공장기업소와 상업에 대해서는 휴전 후까지도 생활 필수품의 원활한 생산과 유통을 위해 장려이용제한 정책을 구사해 왔으나 결국 이것들도 1958년 8월 농업협동화의 완성과 함께 완수되었다. 북한 정부는 수공업자와 중소기업가들은 생산협동조합에, 상인들은 판매협동조합 또한 생산판매협동조합에 가입시켰고, 이들의 경리형태를 바꾸는 동시에 사상의식 개조를 추진했다. 전후 생산력 기반이 붕괴되었던 데다가 개인 상공업이 주로 농촌의 소상품생산에 기반을 두었으므로 농업집단화가 진행됨에따라 개인 상공업의 기반도 급속히 와해되었다.
(2) 전후 경제복구와 사회주의적 경제관리체제의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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