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음악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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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음악의 이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중세 음악
음악의 이해
사회적 배경
신성 로마제국이 붕괴된 450년경부터의 일천년간에 걸친 유럽의 역사는 ‘중세’ 라는 용어로 나타낼 수 있다.
신성 로마제국이 붕괴된 450년경에서 시작하는 이 시기는 ‘암흑시대’ 즉, 이주와 동요, 전쟁의 시대였다. 중세는 문화의 성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와 수도원(1150~1450)이 건축되었으며, 도시가 세워졌고, 또한 대학이 설립되었다.
중세 동안에는 매우 날카로운 신분적 구분이 다음 세 가지 사회 계급 간에 있었다. 그것은 귀족과 농부와 승려였다. 귀족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화된 성안에서 살았다. 전쟁 기간 동안에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전투에 참여하였고, 반면에 전쟁이 없던 시절에는 사냥이나 연회, 마상대회(토너먼트)등을 하면서 즐겼다. 인구의 대부분을 구성했던 농부는 한 칸짜리 방으로 된 움막에서 비참하게 살았다. 많은 경우에 이들은 토지에 묶이고 봉건 영주에 종속된 농노였다. 모든 사회 계급적 분파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수도원의 승려들은 지식에 있어서 실제적인 독점권을 갖고 있었다. 귀족을 포함해서 대부분에 사람들은 문맹이었다.
가톨릭 성당은 중세시대 마을 도시의 모습과 정신을 지배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음악생활도 지배했다. 중요한 음악가는 거의 승려였고, 이들은 교회를 위해 종사했다. 수천 개의 수도원들안에서 있었던 일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 의전을 노래로 부르는 일이었다. 소년들은 교회와 성당에 관련된 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받았다. 교회의 이러한 우세를 생각해 보면 수세기 동안 종교 음악만이 기보되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
그리스도교의 종교의식을 위해서 만들어진 중세음악을 평성가라고 하며, 평성가는 합창단이나 독창자에 의해서 악기의 반주없이 불려지는 단선율 음악이다. 평성가의 종류는 지역별로 여러 종류가 있으나, 로마를 중심으로 발전했고 후에 프랑스의 평성가 전통과 혼합된 그레고리오 성가가 가장 중요하다.
현존하는 수천 개의 평성가 선율들은 다양한 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알렐루야’와 같은 것들은 다음적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다음적이라는 말은 가사의 한 음절에 여러 음을 부른 다는 뜻이다. 그런가하면 시편창법으로 부르는 성가는 단음적이라고도 하며, 이때는 가사의 한 음절에 하나의 음만이 붙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모든 성가가 다음적이거나 단음적인 양식으로 된 것은 아니고, 그 두 양식이 하나의 성가에 동시에 나타날 때도 있으며, 단음과 다음 양식의 중간 형태인 서너 음에 한 음절을 노래하는 부분도 있다.
600년경 그레고리오 성가를 시작으로 중세 음악은 정착된다. 380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정해지면서 기독교 신자들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러면서 자연히 교외의 권리는 향상되었고, 교황은 보다 형식을 갖춘 예배 의식을 위해 전례와 음악의 개정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도가 구체화된 것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때부터 였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전례를 재정비하고 5세기 로마에 세워졌던 가창 학교를 재육성하였다. 또 암브로시우스 성가나 동서 지역 교회의 성가들을 수집하고 기존 로마 성가들을 집대성하여 표준화된 로마 가톨릭 성가를 제정하는 등 중세 교회 음악에 있어 큰 업적을 남겼다.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그레고리우스 1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