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노래 신라 노래 이른 시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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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 노래 신라 노래 이른 시기의 모습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백제악 또는 예악의 형성 과정이나 그 모습은 고구려의 그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백제악의 경우는 일본에 전해진 내력이 고구려의 경우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554년에 일본에 가서 음악을 가르치던 백제인 악사들 선후임자가 교대를 햇다는 기사가 에 보인다는 것에서 입증된다. 백제사람 미마지(味摩之)가 기악(伎樂)을 일본에 전했다는 것도 함께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백제는 고분벽화의 주악도 같은 것도 남기지 않았고 그 밖에 자료가 될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오직 고구려의 경우처럼 악지 삼국속악 조항에 백제노래가 소개되어 있어서 잃어버린 역사의 일부나마 재구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소개된 노래는 각각 (禪雲山), (無等山), (方等山), (智異山), (井邑), 으로 다섯 편이다.
(1) (禪雲山) : 지금은 고창군에 편입된 고을 사람이 부역을 나갔다가 기한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그의 아내가 산에 올라가 기다리며 부른 노래.
(2) (無等山) : 무등산에 성을 쌓자 지방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고 부른 노래.
(3) (方等山) : 신라 말, 장성지방 방등산에 근거를 둔 도적떼가 양가 여자들을 많이 잡아갔다. 잡혀간 여자 가운데 하나가 남편이 와서 구해주지 않는 것을 원망하면서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함.
(4) (智異山) : 구례현 사람의 딸이 지리산에서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고 있었는데, 백제왕이 보고 미모를 탐내 차지하려 하자 죽음을 각오하고 항거하면서 부른 노래.
(5) (井邑) :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면서 부른 노래이다. 정읍 사람이 행상을 하면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산 위의 바위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서 남편이 밤길을 가다가 해를 입을까 두려워해, 진창의 더러움에 부쳐 노래를 불렀다고 함.
위의 노래들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의 노래는 고구려의 경우처럼 지명을 노래 이름으로 했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로 전해진 동안에 원래의 발생지와 관련된 향토적 정서가 이 경우에도 줄곧 중요시되어왔다. 위의 다섯 작품 중에서 산 이름을 딴 것이 넷이나 된다는 점이 특별하다. 이러한 특이점은 백제의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가 살아야만 했거나, 산에 올라가서 원통한 사연을 하소연했다는 데서 백제에서 유래한 정서의 독특한 기풍이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에서는 위의 백제의 노래들 중에서 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음은 1493년에 편찬된 (樂學軌範)에 수록된 정읍사의 원문과 현대역이다.
하 노피곰 도샤 달하 높이 높이 돋으시어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멀리멀리 비치게 하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참고문헌

『(한국시가문학의 원형을 찾아서) 향가의 해부』, 나경수, 민속원, 2004.
『(증보판) 한국고전시가론』, 정병욱, 신구문화사, 1996.
『新羅 音樂相과 詞腦歌』, 呂基鉉, 月印,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