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크게 두 측면에서의 공격에 대처해야 했다. 외부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켜야 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이단 사상들로부터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지켜 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교회는 313년 밀란 칙령으로 박해가 공식적으로 종식되기까지 약 300년간에 걸친 박해를 거치
'라는 혹평도 함께 따라다닌다. 미래의 역사 학자들은 과연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줄지, 그의 50년 연구의 집대성인 <가톨릭 교회>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서로는 <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하느님은 존재하는가? 현대를 위한 답변>, <유대교>, <기독교: 그 본질과 역사 그리고 미래> 등이 있다.
종교에 대한 정의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종교의 현상을 본다면 1) 초자연적인 신에 대한 신앙 2) 모든 존재에 대한 성속의 구별. 3) 신성에 대한 존재에 대한 의식 4) 신으로부터 의롭게 되었다는 확신에 근거한 도덕률의 존재인정. 5) 신성자에 대한 외포감과 함께 그에게 의존하려는 행동. 6) 신에
역사적 비평방법에 의해 교회의 전통적인 도그마에 의해 채색되어지지 않은 순수한 역사의 예수를 찾으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시도를 철저히 재조사한 다음 결론 내리기를, 그들이 재구성한 예수는 주후 1세기 유대교 안에서 실제로 살았던 예수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 당대의 사상적 이념이나
교회가 따른 신앙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던 선교 현장의 선교사들과 비교 종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한다. 18, 19세기의 그리스도교 선교 정책은 서구 식민주의와 그 궤를 같이하는 제국주의적 선교 정책이었다. 즉 서구 열강들의 군대가 약소국을 점령하면 선교사가 뒤따라 들어가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그리스도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던 사도 바울의 이 말은 기독교의 여러 주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심, 믿음과 은혜로 말미암아 실현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 죄악으로 인해 의로울 수 없는 인간들, 그러기에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역사, 기독교인의 경험에 있어서 가장 주된 요
기독교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중세에 있어 철학은 ‘신학의 시녀’에 불과했다고 한다.
중세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를 떠나 기독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고대 그리스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니다. 4세기와 5세기에 걸쳐 활동하였던 성
교회와 protestant교회의 기독교계에서 각기 자기의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에서 나온 결과이다. 루터 연구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하지만 루터의 개성과 개혁운동의 동기에 대한 문제와 루터의 신학을 이해하려는데 그치고 있다. 오히려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면 종교개혁가
기독교 원시교회가 당시 이방 세계의 중심이라고 알려진 로마에까지 이르는 성장과정을 찿아 볼 수 있다(M.Hengel은 사도행전의 역사서술에 대한 신빙성을 강조한다). 그 안에서 나사렛 예수로 시작된 기독교가 지닌 엄청난 세계성과 보편성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보편성을 보여주는 것중에 하나
교회가 해야 한다.
Ⅱ. 교회의 본질(칼.바르트의 교회론을 중심으로)
1.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참된 존재는 무었일까? 이 질문에 대해 칼 바르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참된 존재의 타당한 현실로서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역사적 실존형태이다.2) 즉 교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