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되어 있다. 『향연』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中 플라톤의 모습, 1512-1514, 바티칸 궁, 로마
보티첼리, 서재의 성아우구스티누스, 1480, 오니산티 교회, 피렌체
되는가'라는 삶의 방식을 탐구함에 있어, '완전한 것, 이상적인 것에로 상승하려는 인간 영혼의 기본적 욕구'를
성아우구스티누스는 내성 안에서 플라톤주의와 새롭게 결합한다.(일자에로의 상승)
성아우구스티누스는 “참된 철학자는 하느님의 연인이다.”라고 말한다. 신을 알고 진리를 알기 위해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 있지 않으며, 인간 존재의 심연
어거스틴에게 안수한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울었다고 한다. 수도원에서 명상이나 하려고 했는데, 감독에게 성서를 공부할 수 있게 해줄 것과 어거스틴이 운영하던 수도원을 옮길 것을 부탁했다.
감독들만이 설교할 수 있었고 사제는 할 수 없었는데 어거스틴에게는 설교할 수 있는 특권 주었다. 그는
Ⅰ. 성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이념
아우구스틴이 마니교에서 벗어났을 때, 그는 혼란에 빠졌고 회의주의에 접근했다. 그는 아카데미파(회의주의)가 오래 동안 그를 붙잡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의 회의는 그렇게 극단적인 것은 아니었다. 일정한 고대 철학적 유산과 기독교의 신앙 내용에서
사물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신을 순수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나는 나다"(출애 3,14)라는 신명에서 신의 본래적 이름을 보았고 이로써 신을 `존재 자체`로 표시하는 중세적 전통을 확립했다.
Ⅱ. 아우구스티누스(성어거스틴)의 이력
아우구스티누스의 연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얼마나 가톨릭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와 중세를 넘어 근세에 까지 그 영향력을 주고 있음을 알수 있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 대표적인 저서와 사상을
영혼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우리의 영혼 속에 잠재된 신의 존재를 통해 우리가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고대와는 다른 새로운 정신의 중세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 하였다.
이처럼 어거스틴은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 한 중세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므로 그는 후세에 교육사상가
어거스틴(354~430)의 생애와 사상어거스틴은 오늘날 알제리에 속하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남서쪽 ‘타카스레’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로마의 관원이었으며, 어머니는 열렬한 크리스트교인으로서 ‘성녀 모니카’로 칭송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6세에 학교생활을 시작
사상가 - 아우구스티누스의 교육 사상
(1) 생애
누미디아(북아프리카) 타가스테(지금의 수크아라스로 당시 로마의 속지) 출생이다. 그의 생애는 주요저서라고 할 수 있는 《고백록(告白錄) Confessions》에 기술되어 있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의 하급관리였고 어머니인 모니카는 열성적인 그
사상을 이어받아 기독교의 교의를 체계화하였고 탁월한 교부철학자 성아우구스티누스가 마침내 기독교 교의의 체계를 완성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스콜라 철학은 강대해진 교회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