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록을 보면 세조 이후 국적(國賊)으로 평가되어 민중의 입에서 오르내리지 못하다가 영조 23년(1747)에 와서 비로소 그 누명을 벗고 복위된 인물이다. 이처럼 실제 인물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데 몇 가지 위험성을 안고 있으면서도 작자는 시종일관 안평대군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음을 살펴
나타내고 있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민족유산을 고전문화유산과 혁명전통유산으로 구분하면서 후자의 순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통의 계승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사씨남정기에 대한 남북한문학사에서의 가치평가에 대해 비교 서술하기로 하자.
소설과 실용서적에 대한 중인계층의 광범위한 독서는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대부분의 방각본이 소설과 실용서적이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서얼의 경우에도 중인과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소설을 탐독하였다. 예를 들어 19세기 초 홍희복은 과거에 뜻을 잃고 그 시대의 한글소설을 거의 다 읽었
소설의 유용성 인정 소설의 본질을 논했다기보다 그 교훈적 기능(교훈성, 오락성, 견문을 넓히는 데 사용)을 강조한 말들에 지나지 않으나 소설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였으며 그 유용성 역시 인정되었다.
이 시기의 소설은 한문본과 국문본이 공존하였고 대다수가 필사본으로 유통되었다는 점
소설은 같은 전쟁 소설인 <임진록(壬辰錄)>이 일본을 향한 복수를 비현실적인 기적으로 나타낸 것과 마찬가지로 청나라에서 받은 치욕을 작품적인 공상에서 풀어보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격이 되고 있는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유례 없는 치욕적사건으로, 정치적·경제적
ꊲ고려전기 한문학 작가와 작품
1.고려문학의 출발점-(건국초기)
고려 전기의 지배층은 신라의 전통을 이은 문신귀족인데, 원래 신라 말 당나라 유학을 가서 賓貢科에 합격한 후 돌아온 문인들이다. 이들은 신라 육두품 출신으로서 신라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다가 신라가 삼국으로 분열
역사서와 傳奇類 등 몇몇 작품이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본고의 詩에 있어서는 좀 더 상세하게 그 작가의 층을 구분하여서 실었다. 고려전기의 특징적인 私學의 발달과 음서나 공음전의 특혜로 번창하였던 문벌들의 작품을 대표적인 가문인 崔庶의 海州 崔氏, 李子淵의 仁州 李氏, 金富軾의 慶州 金氏
소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의 이행을 준비하던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나타난 양국의 문학은 당대의 사회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구시대의 봉건적 악습을 비판하고 합리적인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의도가 내재된 것으로, 문학과 정치 이데올로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