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적발전론, 자본주의 맹아론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1980년대 안병직을 중심으로 한 경제사학자들은 일제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가급적 배제하고, 경제지표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 초점을 둔 연구를 토대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제기하였다. 이렇게 두 학계가 서로 다른
한국사가 타율에 움직여 온 역사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내재적으로 움직여 온 역사라는 것, 그리고 정체 된 역사가 아니라 꾸준히 발전해온 역사라는 것을 증명하려 한 이론입니다.
1.내재적발전론의 주장배경
내재적발전론은 일제시대에 조선사회 정체론을 근거로 하여 일제의 식민지지배를 정
쿠즈네츠
‘근대적 경제성장’
1인당 GDP가 20~30년 지속적으로 성장
1910~1940 3.7% 상승
문제점
통계자료의 불확실성
일제강점기 초기
잘못된 물품비중
1940년대 자료
통계에서 제외
진정한 경제성장
‘근대적 경제성장’
양적성장이 아니다
경제의 질적 성장을 의미한다
진정한
(3) 불법적 소유권 변동에 대하여 농민은 분쟁을 제기하였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고과정에서 토지소유권에 관한 다툼이 있을 경우 일단 화해를 유도하고,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분쟁지로 처리하여 분쟁지심사위원회에서 그 소유권을 결정하였다. 분쟁지의 총수는 3만 3,937건 9
식민지 사회의 구조와 작동은 단시 식민지 시기라는 시기적 구별을 통해서가 아니라 식민지체제라는 사회체제의 의미에서 살펴져야만 한다.
식민지 시기라는 역사 시기적 구별 개념은 주로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틀로서 내재적발전론의 입장에서 연구되어졌으며, 이 틀은 조선후기와 일
1. 17-19세기 동아시아 삼국의 사회의 짜임새를 비교하여 서술하고, 이와 같은 차이가 이후 근대적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하시오.
중국의 사회적 짜임새는 개방적 공동체이자 수평적 관계 중심으로, 차서-관계 사회로 흔히 이해된다. 당시 중국은 중앙과 지방, 이원적 체제로 나뉘어져 있었
식민지 국가 vs 박정희 정권
IV. 1960-70년대 경제성장의 식민지적 기원 논쟁: 식민지 수탈론 vs 식민지근대화론
1) 식민지 수탈론: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과 30년대 전쟁을 위한 군수공업
2) 식민지근대화론: 식민지의 정신적 유산
3) 성장 vs 발전: 식민지 경제의 수치적 성장 vs 식민지인의 실제 삶
V.
2.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요 내용
한국인에게 일제식민지 시절이 일제에 의한 수탈의 시절이 아니라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결코 식민지 시절을 옹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식민지 시
의미 : 일본이 실시한 대규모의 국토조사사업
• 토지 소유권 조사
: 준비조사, 일필지조사, 분쟁지조사
• 토지가격 조사
: 지위등급 및 지가 조사
• 지형지모 조사
: 삼각측량, 도근측량, 세부측량, 면적계산,
지적도 조제, 이동지 정리
토지 1,910만 7520필지의
공업의 자본구조
1910년 8월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强占)하의 식민통치 시기를 일제 강점기라고 한다. 식민지라는 것은 경제주체가 상실된 것을 의미한다. 즉 조선의 경제는 단지 일본제국주의의 부품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식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