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사회의 구조와 작동을 아는 것이 궁극적으로 중요해 진다. 그런데 이 식민지 사회의 구조와 작동은 단시 식민지 시기라는 시기적 구별을 통해서가 아니라 식민지체제라는 사회체제의 의미에서 살펴져야만 한다.
식민지 시기라는 역사 시기적 구별 개념은 주로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식민지적 지배 담론에 대한 저항 담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구적 진보관을 바탕으로 한 지배 담론의 힘은 막강했다. 동경이라는 ‘근대 사회’에서 엘리트로 양성된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은 ‘근대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이러한 ‘근대성’은 계몽적 합리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계몽
부분적으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정치의 근대화를 실현하였다.
Ⅱ. 식민지근대화론(식민지근대성)의 함의
동양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전략이자 문화적 담론체계였으며, 한국의 식민지 근대에 나타난 중요한 특성이다. 즉 동양주의는 식민지체제의 제도와 구조 뿐만 아니라 일
체제 이전인 1936년에도 일본인 노동자 수는 전체의 11퍼센트를 조금 상회하는 정도였고, 1943년에는 약 7퍼센트로 낮아졌다. 이처럼 1930~40년대의 전쟁과 공업화는 조선인들을 논에서 쫓아내 도시와 공장으로 보내는 데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카터 j.에커트, 〈식민지 말기 조선의 총력전·공업화·사회 변
식민지 지배의 수탈기구로 이용됨
초기-정미소, 양조장에 치우침
점차 다양한 업종으로 진출
급속한 공업화로 조선인 자본도 함께 성장,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도 빠르게 이식
>이후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에 원동력
인력의 성장
노동자 수 1933 21만 4천 명 > 1943년 175만 명
전시체제 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