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2) 허난설헌 :1563(명종 18)∼1589(선조 22).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
엽(曄)의 딸이고, 봉(燈)의 동생이며 균(筠)의 누이이다. 가문은 현상(賢相) 공(珙)의 혈통을
이은 명문으로 누대의 문한가(文翰家)
유배당한 뒤 요절한 당대의 명사였다. 이들 형제보다 후대에 이름이 더 높은 이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누이 허난설헌. 조선시대 최고 여류시인으로 중국에서까지 그의 시집이 발간됐다. 중국에 전해진 허난설헌의 시는 당시 중국 여류시인들 사이에 그의 시의 스타일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천재 여류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형제가 모두 탁월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으니 어릴 때부터 그런 형제와 함께 공부하며 자란 허균이 문학적 재능을 보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허균은 21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26세에 문과에 합격했으며, 29세에 문과 중시(重試)에서
허난설헌이 김성립에게 출가하였다. 11세에는 아버지가 경상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아버지를 따라 잠시 상주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이듬해인 12세에 아버지 허엽이 세상을 떠난다. 이는 허균에게 처음 겪는 상실감이었을 것이며 이 이후에도 가정에 불행한 일이 계속된다. 14세 무렵부터는 형
허난설헌
신사임담
이매창
의유당남씨
죽서박씨
윤지당임씨
허난설헌(1563-1589)
-조선 중기 시인. 자는 경번, 호는 난설헌. 본관은 양천. 본명은 초희. 균의 누이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짓는 등 신동으로 일컬어졌다.
-15세에 결혼하였으나 고부간의 불화와 친정의 겹친 화액으로 삶의 의욕을
허난설헌 같은 인물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지금까지도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하나의 본받아야 할 효시로 규정받고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인물 혹은 역할상을 기준으로 하여 여성 내부에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통치계급이 그 통치를 원활하게 하
허난설헌과 함께 이달의 문하에서 시를 배웠으며 그 시기동안 인생과 문학관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허균은 17세에 혼인을 하였으나 20세와 21세에 허균과 비슷한 문학적 기질을 보였던 둘째 형 허봉과 누이 허난설헌의 죽음을 맞이하여 큰 슬픔에 빠진다. 또한 24세에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부
허난설헌이 떠올랐다. 그녀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방에 틀어박혀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속을 썩히는 아녀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선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고, 그 중에서도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고, 그 중에서도 자기남편. 김성립의 부인이 된
허난설헌이 있다. 그녀는 일곱 살부터 시를 훌륭하게 지었다고 소문나 여자 신동이라고도 불렸다. 부친 허엽은 동인의 영수였고, 후에 형인 허성은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진 뒤 남인을 대표하는 인물로써 활동하였다.
이러한 명문재사의 혈통을 이은 허균은 외가가 위치한 강릉에서 탄생했는데,
작품을 감상, 평가하시오. (작품을 감상, 평가할 때는 해당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다른 작품과 비교할 때 그 작품이 뛰어난 점은 무엇인지, 자신의 삶 혹은 현대 사회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지 등의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기술하면 좋음)
허난설헌 <感遇 三>의 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