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
1) 해방직후의 움직임
① 우리 민족은 연합국이 일본에 대해 승리한 결과로 주어진 불완전한 해방을 맞이함
② 총독부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사회혼란을 방지하고 건국의 기틀을 마련 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남
ㄱ. 노동자 - 공장관리운동(일본
광복
빛나게 회복하다
'저항해서 잃었던 나라나 주권을 다시 찾았다
해방
구속이나 억압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
외세로부터의 해방
본론- 배경
해방이전 건국준비 활동
가. 국외 – 대한민국 임시 정부, 조선 독립 동맹
나. 국내 – 건국동맹
2. 8.15 해방
가. 건국준비위원회
나. 3
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정기간의 신탁통치에 관하여 협의한다.
② 대일정책의 최고결의기관으로 11개국으로 된 극동위원회를 설치한다.
③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아니하고 통일을 촉진한다.
④ 헝가리 ·이탈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 등 구추축국과의 강화조약을 준비한다.
⑤ 루마니
Ⅰ. 들 어 가 며
48년 분단. 이 역사적인 사건은 그 이후의 한국현대사를 가장 크게 규정지으며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90년대 전세계적으로 찾아온 탈냉전과 그에 이은 신세계 질서 속에서도 아직 한반도는 2차세계대전 직후의 적대적인 냉전질서가 고착되어
건국준비위원회
8월 16일 건국동맹을 기반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
→건국 동맹은 여운형(중도좌파) + 안재홍(중도우파)의 좌우 합작 단체임
1945년 8월 15일 일본패망 소식에 조선총독은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를 위한 준비
→한반도에 대한 권리를 넘겨주는 대신에 안전한 일본 귀국
Ⅱ. 본론
1. 북한의 정치체제
1) 북한의 정치체제 형성과정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북한의 각계 정파들은 평양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의 건립을 주도하였다. 조만식이 앞장선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를 필두로 각 도, 시 및 군 지역에 유사한 건국준비위원회 혹은 자치위원회 등이 설립되었다. 하지
건국동맹은 조직 확대, 치안대, 식량대책 기구 조직의 구체화, 후방교란, 해외 민족해방운동단체와의 연결 등에 치중하여 활동하였다. 중앙조직과 각 도에 걸친 조직은 1945년 해방이후 건국준비위원회의 모체 및 부분적으로 지부가 되었다. 건국동맹은 전시치하에서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조직 면으로
건국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건국준비운동, 김규식과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좌우합작운동, 그리고 유엔소총회의 결의에 의해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되어 마침내 남북한에 외세의존적인 분단정부가 수립되려함에 이에 대항하여 한국민족주의의 이상을 지키고자 김구와 김규식을 중심으로 전
건국준비위원회 평남지부와 현준혁을 위시한 공산계의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회 등이 그 대표적인 자치조직이 었다.
▷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상기 자치조직들을 소비에트정권기관 형태인 인민(정치)위원회로 통합시켰다.
▷ 소련군은 표면상 북한의 자생조직을 인정하고 내부적으로 소련군이 원
위한 수단으로서, 미군정은 1946년 5월부터 ‘좌우합작위원회’를 만들어주면서 이를 지원하려 한 것이다.
좌우합작위원회 추진 시 고려하였던 사항을 살펴보면, ‘첫째, 군정의 행정기구에 한국인 참여를 확대하고 새로이 입법자문기구를 구성하여 미군정 통치기반을 강화한다.’ ‘둘째,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