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스토아 학파
Ⅰ. 에피쿠로스, 스토아 학파의 출현 배경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한 때(기원전 323년)부터 중세 기독교시대의 시작까지의 그리스철학과 그리스-로마 철학의 시대를 흔히 우리는 헬레니즘의 시대(the Hellenistic period)라고 부른다.
알렉산더 대왕, 즉 북부 아프리카로부
로스 시켈로스, 『역사사전』, 제17권, 117장
1. 서문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은 영광의 절정기에 올라 인근 종속국들의 갈채를 한몸에 받게 된 바로 그 순간, 과거의 연인이었던 인물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모든 사람들은 내심 기뻐 날뛰었는데, 그것은 그 사건으로
테아트론(theatron), 원형에서 나중에 반원형으로 줄어든 합창대용 오케스트라(orchestra), 배우가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스케네(skene: 무대)가 그리스 극장의 기반이자 외형상의 틀이다. 애초부터 비극에는 늘 '사티로스 극' 1편이 이어졌는데, 이로부터 발전하여 훗날 희극이 고유의 예술장르로 정착했다.
* 서론
인류역사의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철학적 사고
를 대표하는 헬라적 사유이고, 또 하나는 신본주의(Theocentrism)사고인 히
브리적 사유다. 헬레니즘(Hellenism)은 고대 그리스의 예술, 철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나타난 문화적 이상이다. 이 사상은 현세적이고 물질적
※ 아테네기의 철학 ( B.C 490B.C 322 )
→페르시아 전쟁이후 전환의 시기를 기점으로 철학의 관심이 자연에서 인간 즉 자기 자신 으로 돌아가게 됨.
➀ 소피스트
- 페르시아 전쟁 이후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된 아테네 시민들은 교양을 쌓고자 하는
욕구가 팽배해 있었음. 이 때 가르침을
그리스 형식의 도시를 건설하고 알렉산드루폴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18세이던 해에 마케도니아의 팽창에 위기감을 느낀 아테네와 테베를 비롯한 그리스의 다른 도시국가들은 동맹을 맺고 카이로네아에서 필리포스가 이끄는 마케도니아 군과 맞붙었는데, 알렉산더는 기병대 지휘관으로 참전하
그리스ㆍ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삼고 이를 부흥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다방면에 걸쳐서 일어났다. 기독교 서적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서를 공부하고, 문학가들의 문장을 숙달하는 것이 주된 학습이 되었다. 인간 사유의 대상이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간
그리스의 신전은 최초에는 목재, 다음에는 석회석과 같은 무른 석재들로 지어졌으나, 마지막에는 대리석으로 바뀌었다. 다른 종교적 건물이 내부 공간에 중점을 두는 것과는 달리, 외형적 모습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했다. 이오니아식, 도리스식, 코린트식이 대표적 양식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회화는
배경으로 희랍 문화는 로마의 정치적 이상이었던 동시에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로마 시대에 성행하던 희랍철학으로는 에피쿠로스 주의와 스토아주의가 있었다. 에피큐리안니즘은 행복은 쾌락이라고 생각하였다. 에피큐로안니즘이 행복을 인간의 목표로 삼는데 반하여 스토아 주의는 종교적 색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신들이 비천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모든 것의 근원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라는 헬레니즘(Hellenism)을 잘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한사람 한사람의 인격, 즉 개인을 존중하게 된 것이다. 서구 문명과 우리 문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