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조선봉건왕조가 붕괴과정에 있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오랜 관료생활과 유배생활을 통해서 당시 사회의 제모순(諸矛盾)을 몸소 체험한 유교주의 관료학자였으며, 한국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실학의 거봉(巨峰)으로서 우리나라 사회의 경제사상 전체에 특이할 만한 업적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삼미(三眉)·여유당(與猶堂)·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탁옹(翁)·태수(苔)·문암일인(門巖逸人)·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요안.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 출생. 1776년(정조 즉위)남
1762(영조38)년 6월 16일 사시(巳時)에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京幾道 廣州郡 草阜面 馬峴里)즉 오늘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정재원(丁載遠)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兒名)은 귀농(歸農)이라 했다.
다산은 부친에게서 글을 배웠고 부친의 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닦았다. 4세에 천
다산은 1762년(영조 38년) 6월 16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4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 : 1730~1792)이며, 어머니는 해남 윤씨로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 1587~1671)의 후손이며 조선시대 유명한 서화가인 공제 윤두서의 손녀
생 애
다산은 1762년(영조 38년) 6월 16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4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 : 1730~1792)이며, 어머니는 해남 윤씨로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 1587~1671)의 후손이며 조선시대 유명한 서화가인 공제 윤두
(1)약전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이다.
고려 상장군 금용(金用)의 후손이며 덕녕부윤(德寧府尹) 안세(安世)의 8대손으로 증 이조판서 열의 아들로 명종 9년(1554)에 인동 남산에서 태어났다.
7세때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8세 때 부친을 잃고 11세때 학자인 신당 정붕의 아들 정각(鄭慤)이 보고 "
애니미즘(animism)
무생물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 물신숭배(物神崇拜)·영혼신앙(靈魂信仰) 또는 만유정령설(萬有 精靈說)이라고도 번역되는 애니미즘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아니마(영혼)에서 나온 말이다. 영국의 인류학 자 E.B.타일러가 《원시문화》(1871)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