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모스크바 러시아
몽골의 통치에서 독립을 이룬 이반 3세의 손자인 이반 4세는 3살의 나이에 대공이 된다. 초반 몇 년간의 섭정 통치가 끝나고 1547년에 이반 4세는 기존의 대공이라는 명칭 대신 '차르', 즉 황제로서 즉위하게 된다. 이로써 분권적인 모스크바 공국 시대가 끝나고, 중앙집권적인 모
햇볕정책에 따른 지나친 대북 퍼주기 논란, 미국·보수세력의 반발로 햇볕정책이 주춤
- 미국에 대한 인식 -
· 한국인들의 ‘친미’ 의식은 김대중 정권 하에서도 지속.
· 그러나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 반미의식의 고조.
· 이를 통해 더욱 현실주의적인 한국인의 대미의식이 요구됨.
. 이는 북한에게 있어서 소련의 핵우산만이 미국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배경이 내포되어 있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문혁 지도자들과 홍위병은 북한 사회주의를 수정주의라고 비판하였고, 북한은 중국을 편협한 교조주의라고 비판하였다. 1966년에 북한은 공식적으로 중국을
한국 등 동아시아를 중시하고 있다.
국내경제 재건을 위해 서방과의 경제협력을 도모하는 것이 러시아연방 외교의 하나의 축이라면 다른 또 하나의 축은 옛소련의 핵무기 독점을 유지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위치를 견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핵무기 비
김일성의 등장과 돌아온 공산주의자들
38선 이북에서 인민위원회가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 김일성이라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 정치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일성 장군의 명성은 보천보 전투를 계기로 식민지 조선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김일성은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동북항일연
아르헨티나의 저발전이 세계체제이론이나 종속발전이론 등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아르헨티나의 시기별 정권
1. 페론정권(1946˜1955)
1946년 7월 3일 노동자의 지지를 토대로, 페론은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노동자 우대 정책을 기본으로 한 민중인기주의(포퓰리즘)
북한 사이에 어떠한 공식적인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는 제1공화국시기(1953~1960), 제2공화국시기(1960~1961), 제3공화국시기(1961~1971)의 세 시기로 세분화할 수 있다. 이정복. 『한국 정치의 분석과 이해』, 서울 :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71쪽
제1공화국 시기
제1공화국시기 동안 남북
북한 핵이라는 돌출변수로서의 장애요인을 제거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한국은 세계 및 지역의 탈냉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속되는 대남 군사적 위협으로 인해 냉전구조가 남아있음으로서 냉전이후시대 국제질서의 재편에 중장기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구조적 제약을 가질 수
한국경제에 찾아온 위기가 시대별로 어떤 양상을 지녔으며 그것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지에서 시작하겠다. 그리고 한국경제의 위기에 대한 비교모델로써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경제가 경험한 위기를 제시하겠다. 간단히 말해서, 멕시코는 1994년 전까지 남미 국가들의 전형적인 경제침체를 겪었
한국 또한 전혀 예외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근 120여년동안 제국주의의 침략과 약탈앞에 신음하였고, 그 고통은 대를 이어 지속되고 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새로운 관계 속에 새로운 형태를 통해 이 고통이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1997년 IMF 사태이후 한국사회는 그 에속적 상황이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