却說昭義節度使劉悟, 因不肯移節, 仍守原鎭。
각설소의절도사유오 인불긍이절 잉수원진
移? [y?ji?] 지방의 고위 관리(官吏)의 전임(轉任)
각설하고 소의절도사인 유오는 절도사를 옮기려고 하지 않아 여전히 원진을 지키고 있었다.
監軍劉承偕, 在宮時得寵太后, 視爲養子, 旣爲昭義監軍, 恃恩傲物
위나라 군주 탁발홍이 태자에게 황위를 전해주고 자신은 숭광궁에 있다가 유연이 위나라를 침범해 오니 탁발홍은 대를 잇는 군주 나이가 어려 군사를 다스리지 못하고 다시 병사를 감독해 북쪽을 토벌해 오랑캐를 몰아내었다.
嗣復南巡西幸, 一再外出, 這位淫?不貞的馮太后, 樂得與李奕朝歡暮樂, 共
연불열 면어소군도 소군가부 화의미식 아실빈천 불감당례
?束 [zhu?ngsh?] ① 옷차림 ② 여장을 꾸리다 ③ 화장하다 ④ 몸차림
?(정색할 초; ?-총12획; qia?o,qiu?)然 [qi?or?n] ① 正色하는 모양 ② 두려워하는 모양 ③ 걱정하는 모양 ④ 조용한 모양
결혼시기에 옷차림이 매우 화려하여 포선은 반대로
却說唐主李嗣源, 寵任樞密使安重誨, 連他矯制與否, 亦未嘗過問。
각설당주이사원 총임추밀사안중회 연타교제여부 역미상과문
각설하고 당나라 군주인 이사원은 추밀사인 안중회를 총애하고 임명해 그가 어제를 고친 여부는 또한 아직 일찍이 문책하지 않았다.
重誨?殺任?, ?行奏聞, 唐主反詔數?罪,
연상대 주감등남루 열시형세 당유사원궤사도 차성험고 가작근거 단필수차자병력 성중병불부용 응유아출초각군 재호거사
敷用 [f?y?ng] 사용하기에 충분하다
이사원은 이소진과 성에 들어와 조재례는 잔치를 열어 상대하며 술이 한참달아 남루에 올라 형세를 보니 이사원이 속여 말했다. “이 성이
연(陸九淵, 1139~1193)을 아호사(鵝湖寺)에서 만나게 된다. 이 때 주로 본체에 대한 이해와 공부방법 혹은 교육방법에 있어서 주희와 육구연은 서로를 ‘지나치게 간이하다[太簡]’·‘지리하다[支離]’라고 비판하였는데, 상호간의 견해가 이미 확고하여 절충을 보지 못하였다. 그 뒤에도 서신왕래를 통한
연구회, 한국철학, 1995, 56쪽
둘째, 주자학이란 정이와 주희 계열의 사상적 입장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된 사상적 유형을 말한다. 신유학의 역사는 여러 가지 사상적 실험을 복합적으로 내재하면서 전개되었다. 북송 초기 신유학의 역사에 나타나는 주돈이·소옹·장재·정호 등은 세계와 인성이 기질로 이
연상주 행득저개묘인아 수불금백체개수 오중구쾌 주무경석 상각시환오야단 연연정심
h?n y?n ?? ??? ??:???[n?ngy?n] ① 농염하다 ② 화려하다
?? [ch?um?u]①사전에 준비하다 ②서로 얽혀 떨어지지 않다 ③꽃봉오리가 빽빽한 모양 竟夕 [j?ngx?] ① 온밤 ② 밤 내내
무씨 평생 일찍이 이런 농염함을 겪지 못하
연이어 출현하였다. 이들의 연구대상이 한초의 오경에서 당대의 구경으로 넓혀지고 심화되어 방대한 분량의 주소와 집주들이 나왔으나 금문학과 고문학과의 상호 변론과 옹호를 반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송대에는 유학사에 있어서 커다란 변혁이라고 할 수 있는 성리학이 성립되었다. 북속시대에는
주희
1.리(理)와 기(器)의 선후관계
주자의 형이상학은 주렴계의 태극도설을 골간으로 삼아 장횡거가 논한 ‘기’, 이정이 말한 형이상, 형이하 및 ‘리’와 ‘기’의 구분 등을 융합했다. 따라서 주자의 학문은 이전 도학자들의 학문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학에서 가장 큰 문제는 ‘리(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