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채는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여자들의 대표적인 인간이다. 그렇기에 참 생활이 열릴 것이냐 묻는 것은 본인의 참 생활만이 열리냐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여자들의 참 생활이 열릴 것이냐, 다시 새로운 세계를 살 수 있느냐 묻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이제야 모든 분노가 식고 체증이 가
1.들어가는글
친일시에 대해서 몇몇 작가를 중점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다루는 작가들은 『 실천문학 』(2002년 가을호 )에 실린 친일작가 목록을 참고하여 선정하였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각각의 작가의 작품을 위주로 친일시의 양상과 특색을 보고자 하였다.
2. 친일시에 대하여
요
11.13. 내면의식을 추구한 시
11.13.1. 시문학파가 개척한 길
‘시문학파’가 형성된 1930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이른바 문화통치에서 군국주의적 무단통치로 강화되기 시작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국내에서는 문화운동만이 가능했는데 1930년을 전후하여 전개된 순수문학운동도 이
제 1 장 위기의 세계정세와 신문학의 행방
1. 36년의 위기설
우리 신문학의 분해기는 1936년 이후, 1940년 전후까지 약 5, 6년의 기간을 획한다.
그러면 그 문학의 분해기인 이 시대의 모든 시대적ㆍ객관적인 정세는 어떤 역사적 과정을 표시하고 있었는가.
이 시대의 세계정세의 험악상을 한마디
일제는 한민족을 말살하기 위하여 ꡐ황국신민ꡑ 교육을 철저히 시행하였다. 우리말을 못쓰게 하고 이름과 성조차도 빼앗았다. 이러한 교육을 철저히 받은 식민지 2세대(일제시대에 소년기를 보내었거나 태어난 세대) 중에는 고등문관시험 등에 합격하여 고급관리로 출세하거나(김대우, 전봉덕,
11.13. 내면의식을 추구한 시
11.13.1. 시문학파가 개척한 길
1. 시문학파의 발생원인
1) 당대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가한 탄압 정책의 문제
2) 한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광범한 확대
2.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시문학파의 인식
문학은 현실에 대한 관심을 버려야 순수하게
1. 들어가며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데올로기의 분쟁의 결과인 38선이라는 국토 분단의 분계선이 생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들에 의해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비극의 세월이 시작된다. 그리고 6.25라는 전쟁의 결과인 새로 설정된 비무장지대를 경계로 해서 남북한
2) 방탕과 오만과 패기로 가득한 문학활동 시절 (1918~1929년)
김동인은 귀국하여 김혜인과 결혼을 하고, 예술에 대한 동경과 문학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1918년 12월 주요한, 전영택, 최승만, 김환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초의 동인지 <창조>의 발
1. 서론
해방 후 북한 문학은 최고 통치자인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교시에 의해 기본 방향을 설정했고,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한 당의 문예정책에 의해 인도되어 왔다. 수령 혹은 지도자라는 호명으로 그 지위를 나타내는 김씨 부자의 경우는, 모든 문학 또는 예술 논의의 시발이면서 스스로 비평
김동인은 1900년 10월 2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김대윤과 이복형인 동원은 평양 교회의 장로로 활동한 바 있다. 이런 연유로 김동인은 어려서 유아 세례를 받았다. 그의 집은 하수구리에서 8대를 이어온 전주 김씨 가문이요 부호로서 조부 대에는 벼슬길까지 올랐었다. 이와 같이 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