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어느 시대 건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보다 안정되고 발전된,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사회를 건설하고나 하는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과 욕구는 새로운 형태, 새로운 모습으로 분출되었다. 우리는 1894년 동학농민군들이 변화와 개혁의 주체세력으로 성장하여 그 사회가
단지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재주의의 문학에 지나지 않으므로, 농민문학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에 이것은 잘못된 것임을 밝히고, 본론에서 김유정의 농민소설의 위치를 정리한 뒤, 그의 작품분석을 통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사실주의적 농민소설작가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3.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의 활동
(1) 3ㆍ7제 소작료 운동
해방직후 권력의 공백기 동안 나타났던 농민들의 산발적이고 폭력적으로 나타났던 농장자주관리 움직임과 소작료 불납ㆍ인하 움직임이 건준지부와 인민위에 의해 수습되어 가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농민들의 폭발적인 혁명 열기를 목
1) 고부민란의 배경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은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인 전라도 고부군의 민란에서 발단하여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농민봉기와 합류하여 일대 농민전쟁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고부군수는 민씨일파
와 결탁하고 있었던 척족 조씨(순조의 세자 익종의 부인이 조씨) 가문에 속한 조병갑이
Ⅰ. 머리말
본고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고부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그 동안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새롭게 주장되고 있는 茂長 蜂起設의 근거를 제시하고, 茂長에서의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겠다.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주로 농민군의 주력을 이룬 전라도의 남
서문
일제 하에 노동자·농민 운동을 다루는 책을 보면 대부분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양분법을 사용하고는 한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이분법이 꼭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식민지 하 노동운동이라는 커다란 명제 아래 농업 노
농민소설
일제 시대의 농촌은 일본 제국주의의 일차적인 수탈 대상이었다. 따라서 일제의 수탈이 극에 이른 1930년대의 우리 농촌은 빈곤과 식민지적 모순의 구체적인 현장이기도 했다. 이러한 농촌 문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1931년 <동아일보> 주도로 시작된 '브나로드' 운동 때문이었다. 당시
농민들로부터 조세를 수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거나, 또는 지주가 전호농민들로부터 지대를 수취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정도의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 유통되는 물품은 주로 봉건 관료나 양반지주 등의 사치나 향락을 위해 쓰이는 물품들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는 농민들의 농업생산에 필
농민군의 병영성 점령으로 성은 불타고 이듬해인 1895년 병영이 폐지되었다.
전라도 육군의 지휘소인 병영을 이곳에 설치하게 된 군사․지리적 이유는 당시 병영의 융성함을 반증하는 증거의 하나로 강진군 옴천면에서 병영으로 오는 고개의 이름이 귀활재(활기가 넘치는 병영으로 넘어가는 고개
일제하의 농민문학에 관한 논의는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1940년대까지 지속된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농촌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큰 것이었고, 그것을 반영하는 문단의 태도 역시 진지한 것이었다. 더구나 당시 인구의 가장 많은 숫자가 바로 농민층에 속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농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