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시대 성리학적 여성관
성리학은 송대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새로운 유학이다. 성리학이 성립된 것은 공자에 의해 원시 유학이 성립된 후 1700년 뒤의 일이다. 그러므로 성리학은 원시 유학에서 연원한 것이지만 오랜 기간 변화 과정을 겪으면서 원시 유학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을 갖게
내훈이십편 우류편고인가언의행 작권선서 반행천하
女憲 : 《후한서》 조대가전(曹大家傳)에 보인다.
女誡:후한 반소(班昭)가 쓴 부녀자의 처세 규범을 설명한 저작이다. 여자의 생활과 처신에 관한 계율
類編:같은 종류의 글을 분류하여 편찬함
이 뒤로 다시 여인의 법과 여인의 경계를 수집해 내훈
내훈(仁孝文皇后內訓)』 『여범첩록(女範捷錄)』의 네 가지 책을 말한다. 여사서에 제시된 이상적이 여성상의 구현은 생활, 행동, 교양, 미덕, 대인관계 등 여러 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덕성, 함양, 수신, 신언, 근행, 더 나아가서는 부지런히 일에 힘쓰고 절약 검소한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침채(沈菜)'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침채→딤채→김채→김치로 변화하면서 김치가 되었다. '저(菹)'라는 말은 조선시대의 성종 6년(1475)에 와서 성조의 생모인 인수대비가 부녀 교육을 위하여 엮어낸 내훈(內訓)에 보면「저(菹)」가 「딤 (딤채)」(※ 김치박물관 주: ''는 ㅊ 밑에 고어인'아래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