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이후의 훈민정음론
1. 들어가며
세종 이후 세조와 그 이후에도 언해서들이 간행되기는 하였으나, 조선 시대 어학 연구는 훈민정음 창제를 전후로 하여 10여 년간 활발했다가 부진한 상태에 놓였다. 한글은 세종의 찬란한 업적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급면에 있어서는 성공적인 것이 아
아득한 옛날에는 오늘의 韓半島(한반도)와 滿洲(만주)에 걸친 넓은 지역에 여러 언어들이 널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행히도 이들은 거의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고 소멸하여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옛 史書(사서)에 토막 기록들이 더러 전하여 이 언어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을
Ⅰ. 서론
조선의 국어 연구는 세종 조 훈민정음 창제와 이에 이은 『동국정운』과 『홍무정운역훈』 편찬 등의 업적을 통해 융성했다. 그러나 국어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중종 조 최세진의 『훈몽자회』를 지나면서 휴식기에 접어들게 된다. 국어에 대한 관심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발흥되는데
3) 조선
고려말 신유학(性理學)이 도입된 후, 이를 적극 수용한 신흥 사대부들에 의해 조선 왕조가 개창되자 유교는 國是로 천명되었다. 世宗 元年(1419)에는 유교의 지도이념에 합당한 체제정비를 수행하고 유교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자 ≪四書大典≫,≪五經大典≫,≪性理大典≫을 수입하여 본격
◎조선후기 正音學者(정음학자)들의 正音觀(정음관)
영 ․ 정조 이후 고종 때까지에는 유달리 훈민정음에 관심을 가졌던 학자들이 많았다.
(1)신경준(1712~1781) : 旅菴(여암) 신경준은 한글 창제 후 처음으로 한글이라는 문자를 훈민정음해례본과 마찬가지로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로 나누어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