補閑集』을 엮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정리한 시품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각각의 책들에 정리된 평어들을 보면, 그 분류가 편찬자의 시각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평어의 면에서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補閑集』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상품과 차품에서는 중국의 영
補閑集)’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인로는 “나는 문을 닫고 들어앉아 황정견, 소식 두 사람의 문집을 읽은 뒤에 말이 굳세고 운이 맑은 소리를 내게 되었으며 시 짓는 지혜를 얻었다”고 했는데, 이규보는 “나는 옛 사람을 답습하지 않고 신의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세상 사람들은 두 사람
補閑集』의 서(序)에서 “글이란 것은 도를 실행하는 문이니 실없는 거짓의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 문학의 재도적(載道的)기능을 내세우고 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시라는 것은 잔재주에 지나지 않지만 혹 세상의 교화에도 관련이 있으므로 군자는 마땅히 여
補閑集, 이제현의 역옹패설 등이 쏟아져 나온다. 조선초의 왕조 창업기의 특수시대상황에는 한동안 자취를감추었던 패서류가 왕조안정기라고 할 수 있는 15세기 말 이후에 대량으로 쏟아져나온다. 물론 稗說이라는 말은 패사, 패승, 야승, 패관야승 등 유사한 다른 명칭과 혼용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패
◎ 용사와 신의 - 두 시대의 충돌
이들의 라이벌 관계를 잘 드러내는 것이 문학창작 방법론이다. 최자(崔滋)는 ‘보한집(補閑集)’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인로는 “나는 문을 닫고 들어앉아 황정견, 소식 두 사람의 문집을 읽은 뒤에 말이 굳세고 운이 맑은 소리를 내게 되었으며 시 짓는 지혜를 얻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