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뜻을 읽고 배우는 것은 같지만 이인로는 옛사람의 문장과 문체를 갈고 닦아 자신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태를 지향했고, 이규보는 답습을 넘어 생경하더라도 새로운 뜻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최자가 지적하고 있는 문이 바로 ‘용사(用事)’와 ‘신의(新意)’라는 다른 문이다.
이인로의 사상적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제 살펴볼 것은 오세재, 임춘 등 다른 여섯과 더불어 시와 술로 즐겼다는 기록이다. 이 일곱 사람의 모임을 죽림고회(竹林高會)라 부른다. 위에 실린 고려사의 기록처럼 중국 진(晋)나라 시대의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비교하여 해좌칠현(海
신의와 용사에 주목하였고 지금까지 그 개념과 관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초기에는 신의와 용사를 반대 개념으로 설정하고 대립 관계로 파악하는 논의가 주를 이루었는데, 신의와 용사 각각을 주장하였다고 하는 문인 즉 이규보와 이인로(李仁老)를 차례로 ‘신의론자(新義論者)’,
신의와 용사
Ⅰ. 서론
문학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향가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신라 때 이미 일반화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고려 전기까지의 한문학 작가들 글에 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발언이 여기저기 있었다. 문학이 성장하면서 문학을 하는 자세와 방법에
이인로에 이어져 이 땅 최초의 비평문학서인 <파한집>이 나타난다. 이인로는 시적재능은 천부의 것이기에 그 재능의 소산인 시는 자연지취를 지닌 자연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시사하면서도 용사나 환골탈퇴에 있어서도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기교론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다시 이규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