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조약이자 불평등조약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 허용).
1882
조·미 수호 통상 조약(朝·美 修好 通商 條約)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맺은 조약 (치외법권, 최혜국대우 규정).
1882
임오군란(壬午軍亂)
민씨 정권에 대한 도시 하층민의 불만과 별기군에 대한 차별로 인한 구식군인들의 불만으로 이들
개화파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평가는 이후 북한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일본 및 남한 학계에까지 어느 정도 파급 효과를 남겼다. 갑신정변과 김옥균에 대한 평가 및 연구방향은 1958년 3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회 때 행한 김일성의 연설로 또 한 번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다른 나
온건개화파와 급진 개화파, 그리고 척사파 사이의 대립은 갑신정변(1884), 동학농민혁명(1894)등에서 드러나지만 후에 민권사상과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사상으로 전개되어 나가 합방 후의 가장 큰 항쟁인 3.1운동의 정신적 기반을 이룩한다.
개항이전의 정신적인 사회의 흐름은 내정을 개혁하여 민
운동이라 불리는 정변을 일으키게 되는데 바로 갑신정변(甲申政變)이다. 이는 최초의 개혁운동 혹은 개화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조선의 시대 흐름상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임과 동시에 훗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 갑신정변에 대한연구의
개화가 된 상태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조선을 문명국으로 칭하였다.
과 급진적인 개화파들이 등장하였다. 이런 급진적인 개화파들의 경우 조선은 근대화가 되지 않은 국가이므로 서양의 문명을 수용하여 급진적으로 개화를 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개화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