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예과, 1925년 개교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서의 대학은 ‘대학령’에 의한다는 것뿐이었고 어떠한 형태와 명칭을 갖는 대학이 될 것인가에 대한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당시 ‘조선대학 예과’ 혹은 ‘조선예과대학’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었다.
(2) 경성제국대학
대학원 과정
재학생 3,2241명 (2006년 기준)
리즈대학교 도서관
영국의 4대 연구도서관 중 하나
중앙도서관
3개의 전문도서관
2개의 부속도서관
4개의 부설시설
소장자료
장서량 270만여 권
정기간행물 9,000여종
서울대학교
1946년 구 경성제국대학 건물을 활용하여 세워진 국립종합대학교
1. 서론
경성제국대학(이하 경성제대)은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의 정체성을 논함에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성제대를 서울대의 전신으로 보고 있으며, 경성제대가 지닌 친일성을 서울대에 투영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서울대는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대학이라는
경성제국대학교 교수 시기
1926년 경성제국대학의 문학부문학과 조선어학조선문학 제2강좌 담당교수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조선어 연구를 시작했다. 향가 해독에 도전하여 본격적인 고대가사연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향가 및 이두의 연구郷歌及び吏読の研究』(1929)를 내 놓았으며,
연구의 필요를 이유로, 일본 본국에 버금가는 고등교육기관을 조선에 확충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1920년 1월 하순 일본 본국에서도 도쿄제국대학 명예학장과 교수 수 십 명이 [만선문화의 연구를 도모하기 위해서], 서울과 중국의 대련또는 여순에 대학을 설치할 것을 요구하는 [건백서]를 당시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