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발해는 소수민족 지방정권”
중국의 시각에서 발해는 ‘말갈족을 주체로 한 민족 정권인 동시에 당나라 중앙 정권의 책봉을 받아 당왕조에 예속된 지방 정권’ 혹은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 정권’이다.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을 대변하는 국정교과서에서도 ‘당현종(唐玄宗)이 발해군
공주의 무덤은 독립적인 능묘를 형성하지 못하고 모두 배장(陪葬)하였다.
(2) 차이점
① 매장한 무덤의 지점, 발해 왕실무덤떼 가운데 그들의 위치 그리고 다른 무덤들의 관계가 같지 않다.
② 두 공주무덤의 구조가 같지 않다. 정혜공주묘는 ‘석실봉토묘’이고 정효공주묘는 ‘전실봉
발해에 관련한 역사의식이 미약해진 것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역대 사서에서 발해사를 기록한 사료가 극히 미미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발해에 관한 기록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표적이 되어 중국이
당나라는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의 땅을 평양에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여 지배하였다. 고구려 유민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나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였고, 이에 당나라는 고구려 유민 2만 8천여 가호를 중국 땅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때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大祚榮 :
발해의 대당·대일본 외교를 살펴보고 이 관계를 통해 남북국의 대립과 교섭과정을 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남북국이 서로 공동체 의식이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동북아시아가 시끄럽다. 특별히 이슈가 되는 것은 고구려와 발해의 문제인데 중국, 남한, 북한, 특히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