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에 못미쳤다는 것이다. 또 동쪽 연해주 영토는 지금의 국사책 지도와 별반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싱안링산맥까지 이르러도 고구려의 영토가 더 넓지만, 내몽고까지 영토가 미쳤다는 학자들은 그당시 인구 수를 살펴보면, 후연은 약 800만, 고구려는 120만 정도였기 때문에 국력이 적었다고 주
·宋)와 통교하였고, 유연(柔然) 등 새외(塞外) 민족과도 통교하면서 외교관계를 확대하여 중국을 견제하였다. 427년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수도를 고조선의 문화 유산지인 평양으로 천도하여 집권적 정치기구를 정비하고 국력을 신장시켰다.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신라와 백제는 나제동맹(羅濟同
고구려에 안동도호부를 두었으며, 곳곳의 부흥운동도 실패로 돌아갔다.
(4) 나.당 전쟁(675년)-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모아서 당나라를 쫓아냄.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영토로 만든 당나라는 다시 신라까지 넘보았으나, 670년 신라가 먼저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를 공략, 나당전쟁으로 들
고구려와 백제에 사신을 파견하여, 신라를 공격하지 말라고 권고하지만, 고구려는 역사상의 영토 문제라는 이유로 당나라의 권고 조치에 대하여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에 당은 요동의 역사귀속문제를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특히 고구려가 당나라가 파견한 사신을 잡아 가둔 것은 당나라가 전쟁이라는
고구려-신라 순으로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삼국시대에 주요 왕은 고대국가를 성립시킨 인물을 위주로 정리하였으며 기준은 율령반포, 불교 수용, 태학설립이다.
Ⅱ. 고구려
1. 고구려 주요 왕의 업적
태조왕(53~146)
고구려의 영토 확장에 힘썼으며 연맹 왕국 단계에 있던 고구려를 고대 국가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