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이 계루부(桂婁部)로 교체되었으며 高氏 王權이 확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 小國에 대한 지속적인 복속과 중국 세력과의 효과적인 항쟁을 통하여 고대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국가형성 이후 고구려가 수행한 대외전쟁은 고대국가로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고구려는
회의에서 합의를 통해 왕위계승의 후보를 추대하던 관행이 귀족세력들 간의 이해관계가 걸린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쟁탈전으로 변화했다.
ⅳ. 변화의 방향 : 위와 같은 귀족세력 간의 정쟁은 삼국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왕에게 집중된 권력을 바탕으로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제를 통치의 기
회의 지배층에 대한 신분 체계 정비도 따랐을 것이다.
고위 귀족들은 대개는 과거 서라벌 신지(臣智)의 후예들로서 이사금이나 마립간의 후손이었다. 사로국의 발전과 더불어 중요 관직을 담당하며 신분적 자부심이 더욱 고양되었고 자신들이 이사금이나 마립간의 후예임을 드러내 신분이 왕의 후
고구려와도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전방위외교를 추구하여 당시 급박했던 동아시아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선진문물을 수입하려는 외교노선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되자 외교노선을 변경하여 백제부흥전선에 참여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왜국은 위기의식을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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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전성기(진 흥왕~진평왕, 한강 점유)
7세기
여․수전쟁(612)
여․당전쟁(645)
백제의 멸망(660)
고구려의 멸망(668)
※ 부여의 대가(마가, 우가 등) 나 고구려의 대가(상가) 는 삼한의 견지와 읍차와 같이 최고 통치자는 아니었다.
2. 삼국시대
1) 국가의 분류 : 고대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