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였느냐 하는데 관료제사회였느냐 하는데는 충분히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1972년 박창희씨가 ‘관료제설(官僚制設)’을 주장한 것을 필두로 하여 종래 통설로 여겨왔던 ‘귀족제설(貴族制設)’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활발하게 제기되었다. 여기에서는 앞에서 얘기한 ‘귀
고려를 관료제사회로 보아야 하는지 귀족제사회로 보아야 하는지의 문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동서양의 귀족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에 비추어 “귀족제사회”로 보는 것은 그다지 무리가 없지만 “관료제사회”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훨씬 더 많
4) 관료제설의 비판
신라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전근대 국가는 모두 귀족국가이지만, 성격을 달리하는 귀족적 면모의 발전도상에서 고려의 귀족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의 귀족사회는 신라 골품사회의 발전된 형태로서 문벌에 의해 제약된 사회이며, 관료제가 좀더 발전한 조선 양반사회
고려왕조는 귀족제사회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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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귀족은 양민(良民)보다는 상위의 특권신분층(特權身分層)이라는 것과 이러한 신분은 특권적 가계(家系)에서 출생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즉 ‘혈연에 의해 특권적 신분을 세습하고 이러한 특권적
1. 들어가는 말
고려는 귀족제사회였는가, 아니면 관료제사회였는가. 고려사회의 성격규정은 관인층을 선발하였던 두 제도인 음서제(蔭叙制)와 과거제(科擧制)의 문제를 귀족제(貴族制) 내지 관료제(官僚制)를 가름하는 개념설정의 기준으로 삼아 추구되었다. 이에 대한 근래 한국사학계는 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