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고구려(고구려시대)의 불교
고구려는 B. C. 37년 小水(渾江)를 중심으로 消奴部, 絶奴部, 順奴部, 灌奴部, 桂婁部 등 5部族(진단학회, 1981 : 226)이 세운 국가로 28왕 705년간 유지되었다.
太祖王(53~146?) 때에 桂婁部 高氏의 왕위 계승권이 확립된 이후 故國川王(179~196) 때에 이르러 왕권의 강화와 국가
불교적 색채를 내세우면서 자기 세력의 독자성과 왕권중심적 권력 주도를 전면에 드러냈다.
예) 마진이나 태봉이라는 불교적인 나라 이름.
호족정책 : 호족들의 세력권을 인정하기보다는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고, 불법에 의지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 했다. 예) 미륵불을 자칭. 큰아들을 청광보
3. 최승로와 시무 28조
(1) 고려 초기 국가체제의 정비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한 ‘시무 28조’는 982년(성종1)에게
최승로가 성종에게 고려 왕조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상서문으로
현재 남아있는 우리나라 정치가들의 정치개혁론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2) 최승로의
유교경전에서 시사 받았으며 이를 토착화하는데 성공하였다는 유교사 연구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전개의 단계마다 우리의 지성들은 중국과 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유학논리를 수용하였음이 통일신라에서 고려왕조로의 교체기에서도 소위 숙위학생들에 의해서 달성되었으며 고려왕조에
시행되며, 경제적으로는 한국 중세사회의 물질적 기반을 이루게 되는 사적 토지 소유에 기반을 둔 지주제가 형성되며, 사회적으로는 법제화된 세습적 신분제가 확립되며, 이데올로기로서는 중세적인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합리화시켰던 불교와 유교사상이 도입ㆍ정착되기 시작했던 점이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