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로 하고 포대기에 싼 다음에 동해 바다에 버렸다. 그 때 갑자기 선녀가 내려와 아기에게 젖을 주었다. 몇 일 후 그들은 다시 그곳에 갔는데 어떤 아이가 바다 한가운데 있는 큰 바위 위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고 있었다.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고 글만 읽었다.
운데 최치원의 것이 146편이나 된다. 질뿐만 아니라 양에서도 대단한 경지에 이르러 ‘동국문종(東國文宗)’이라는 평가가 헛되지 않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최치원의 생애와 사상을 토대로, 실제 교과서에 수록된 고운의 작품과 그 이외에 그의 저서에 나와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의 시세계와 산
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존재이고 .한문학을 본격적으로 개척해서 '동국문종(東國文宗)'으로 칭송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유교뿐만이 아니라 불교, 도교 모두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썼으며 또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였다. 문장이란 뜻이 통하는 것은 물론이며, 또 사람들
인정함으로써 신의 관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타일러의 학설은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종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또한 원시인에게서 꿈이 그처럼 중대한 경험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두고 논란도 있었으나, 이원론(二元論)의 사고양식을 설명하는 양식으로서 아직도 그
고운최치원(857~950?)은 경주 최씨로서 자는 孤雲․海雲․海夫․弘雲등 이라 하며 후세인들이 그를 높여 유선이라고도 불렀다.
당시의 상황은 구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제의 도래를 기다리는 혼돈 속에서 극도로 복잡다단했던 시기였다. 사상적으로는 儒․佛․道의 삼교가 상호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