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건국이념은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유가 이데올로기였으나 건국 이상은 곧 쇠퇴하여 15세기 후반에 이르면 훈구관료층은 개혁 이념을 갖춘 새로운 지식인들의 도전에 직면한다. 이들의 집단적 행동은 연산군 4년에 일어난 무오사화를 계기로 참혹한 패배를 당하지만 그들의 이상주의는 조광조
한다.
이러한 고시조를 비롯한 모든 고전시가는 노랫말과 악곡의 상호 제약적 관계 속에서 관습적으로 형성되고 향유되어 온 것이므로 노랫말과 악곡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해당 장르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우선 고시조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은 형식적 틀을 철저히 준수한다.
문학 분야에도 나타나게 되는데, 민요, 설화, 탈춤이나 판소리 등의 서민 문학이나 풍요(風謠), 사설시조, 소설 등의 중인 문학의 활발하게 창작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즉 조선 전기의 양반 사대부 중심의 시조나 가사 문학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미의식을 이 시기의 문학은 실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 때문에 ‘강호가사’는 의의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때문에 본 발표에서는 이처럼 사대부들의 이념과 대상에 대한 인식이 조화롭게 그려지고 있는 ‘강호가사’에 대하여 형성배경과 그 발전양상, 그리고 주제별 작품을 살펴보고, ‘강호가사’가 갖고 있는 문학사적 의의를 이해하고자 한다.
문학작품이 씌어졌던 시기다. 3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정치, 문화 활동에 대한 군국주의적 파시즘의 억압과 검열이 강화되어, 문학은 역사와 현실을 정면에서 다루지 못하고 탈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대상황의 변화로 인하여 1930년대의 문학은 20년대의 문학과는 다른 전개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