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硏究史 정리
경기체가는 고려 고종 때의 「한림별곡」을 효시로 조선조 말인 1860년 민규의 「충효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유지했던 국문학의 시가 장르다. 경기체가는 26수에 지나지 않아 수적으로는 비록 적으나, 그것의 문학사적 가치는 우리 시가사에서 결코 도외시할 수없는 영역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근대의 문학 연구가들은 이야기 문학 특히 소설에 대하여 인물․사건․배경 내지는 나아가 주제․구성․문체 따위의 고찰을 그 핵심적인 연구 본령으로 삼아 왔다. 이들은 물론 설화 문학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주요 연구 명제들이다. 따라서 설
시가 곧 인생임을 어렵게 정의하고 있다. 요컨대 선인들에 있어 문학이란 단순한 삶의 일부가 아닌 삶을 조합하는 생장점이었다. 글을 통해 자신을 밝히고, 서로의 글을 삶의 모범으로 삼았으며, 자신을 수양해왔다. 발표에 앞서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의 우리가 결코 따라갈 수없는 이러한 선
수 있다.
그의 성장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이는 어머니 밀양 박씨였다.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은 그는 “과부의 자식은 몇 백 배 더 힘써야 조소를 받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교육 아래에서 엄격하게 바른 몸가짐을 배웠다. 어린 시절 숙부 이우李?로부터 『소학』을 배웠다. 23세에는 성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