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조린이 맡았다. 조선인 항일유격대원들의 88여단 생활 중 주목할 만한 것은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말에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분리해 나와 조선에서 당 건설과 해방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조선공작단을 결성했다는 사실이다. 조선공작단은 김일성을 단장으로 하고 최용건을 당위원회 서기로 해
북중관계와 앞으로의 북중관계의 변화에 대해서 조사하였다.
● 본론
[1]냉전이전시기
1.항일 투쟁시기의 북중관계
1)군사교류
배경 : 1931년 9월에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중공 중앙은 만주성위원회에 항일 유격대의 창설을 지시하였고, 당시 일국일당주의 원칙에 의해 중국공산당에 편입되어있던
시기, 노선차이와 분열의 시기, 탈냉전 시기, 북한과 중국의 새로운 협력관계 모색, 이렇게 4시기로 나누어 보도록 하겠다.
(1) 한국전쟁과 동맹 시기
북∙중 관계는 양국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형성되어 왔다. 중국공산당이 항일투쟁과 국공내전을 치르면서 북한으로부터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한중 수교 후 냉각되었던 양국의 관계는 다시 회복국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중국은 1995년부터 대북 원조를 재개했으며 양국 무역에서 철폐했던 구상무역과 우호가격제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10월 중국공산당 총서기 강택민이 조선
항일연군교도려, 일명 88여단을 결성했다.
2)조선인 항일무장 세력의 진로 변경
● 8•15를 전후해서 벌어진 중•소조약 체결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진로에 커다란 영항을 미쳤다. .
● 소련이 공산당 부대인 88여단의 대일전 참전을 막았던것이 8•15 전후 시기 조선인 항일유격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