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사회의 질서에 순응케 만드는 '은행 저금식 교육' 이라고 비난하며 '문제제기식 교육' 을 역설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주장이다. 1979년 브라질로 돌아온 그는 좌익 노동자당의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1988년 상파울루의 교육담당관이 되었으나 몇 년 뒤 사임했다. 프레이리는 20권 이상의 책을
교육만 받고서도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그는 권위주의와 온정주의로 가득찬 전통문해교육 방법에 불만을 가지고, 1947년 레치페 지역에서 문맹퇴치 교육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60년 초기에 대중문화 운동을 펼쳤고, 프레이리의 방법은 브라질에서 성공을 거둔다. 64년, 2천만명의 비문해자를
프레이리는 경제적으로 무력하고 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상태를 '침묵의 문화' 라고 규정하고, 이를 영속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교육제도 대신 인간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존의 교육을 사회의 질서에 순응케 만드는 '은행 저금식 교육' 이라고 비난하며 '문제제기식 교육' 을 역설한 것도
교육을 말한다. 우리는 교사위주의 수업이 항상 올바른 것으로 생각하여 일방적으로 수업을 받고 생활했으나 학생을 한 인격체로서 대하는 교사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교사들도 위 책을 정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장에서는 교육사회학3공통) 다음에 제시한 도서- 페다고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교육철학)
전통적인 교육은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정리 보관케 하는 은행식 교육이라 보았다. 이 교육은 반복할 것을 강조함으로 학생들을 순종적으로 길들인다. 따라서 이 교육과정은 사상과 가치들을 강요하는 폭력을 한 형태이고, 사회 현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