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고 그들이 더욱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돕는 일,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교육하기 위해 교회는 존재한다.
교회의 다섯 가지 사명에 대한 교회의 활동은 사도행전에서 발견된다.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교회의 지체들의 관계를 단절시켜 버림으로 유기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결국 교회가 갱신되려면 교회의 지체들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효과적이면서도 교회의 본질에 적합하게 교인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기능을 감당하게 할 수 있는가? 소그룹은 이러
교회론에 따른 교회의 정의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공동체이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받들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교회의 정의는 현대의 목회적 상황과 교회의 소명과 관련하여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도전 앞에서 교회를 부름받은 하나님
교회를 지배하는 어떤 교직 계급이나 교회의 조직체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권주의는 교회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교회안의 지도적 인물이나 교직자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자이며 하나님 말씀의 봉사자에 불과하다. 바르트는 교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교회의 객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회의 주체이다. 성직자와 평등하게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들인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교회에서 평신도는 잠자고 있다.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자들이지만 성직자와 평신도에 대한 오해로 교회지도자들은 잘못된 평신도 상을 만들고 있다. 평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