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7세기 고전소설사의 지반과 소설 향유 양상
1) 국문소설과 한문소설의 공통 지반
조선 전기 소설사의 판도를 한문소설로만, 그리고 그 향유층을 사대부 남성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16세기에 이미 적지 않은 국문/국문본 소설이 유통되고 있었으니, 저간의 상황을 전하는 『오륜전전』서문을
소설책을 통해 독자는 소설을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개물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소설의 표기 형식과 유통방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표기형식이 갖는 의의는 남다르다. 표기형식은 크게 한문 국문 국한문혼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은 우리나라 독자층의 확대와
소설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고소설들은 작가의 이름을 남기지 않아 작가미상인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사씨남정기>는 정통사대부로서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서포 김만중의 작품으로, 작가가 분명히 밝혀졌으며, 또한 사대부가 창작한 국문소설이란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국문학통사 3』p.9)
, 더구나 임진왜란 이후 소설문학은 주제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 창작 경향과 형태상 발전, 묘사수법 등에서 본격적인 발전을 이루고, 소설이 새로운 문학 갈래로서 뚜렷한 모습을 갖추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소설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설-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
소설사의 단계가 고소설 그 당시에는 소설을 패설(稗說) · 고담(古談) 등으로도 일컬었으며, 국문으로 된 것은 언패(諺稗) · 언서고담(諺書古談) 등으로 지칭하였다. 우리말 명칭은 고담과 같은 뜻인 이야기책이었다. 신소설이 나오게 되자 이것과 구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