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지난 세기 후반까지 아시아의 ‘근대’는 일반적으로 ‘서양의 충격(Western impact)’과 그에 대한 ‘아시아의 대응(Asian response)'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되어 왔다. 즉, 유럽은 16세기 신항로의 개척 이래 세계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산업혁명을 이룩하였고, 그 결과 유럽의 자본주의와 근대 문
세기 미국의 등장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칠것이라고 가장 크게 예상되는 인도, 무자원·가공수출이라는 경제 구조가 비슷하고 세계에서 한국과 가장 유사한 경제와 산업 구조를 지니고 있고 가까운 지리적 여건을 가진 일본,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규모와 교역규모를 가지고 있고 세계 3대 경제대국
은 9세기의 중국 절강성 청자 양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청해진으로 수입되었다고 추정된다. 이 같은 사실로 인해 청해진이 사회사, 정치사 뿐 아니라 도자사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즉 한반도에 중국 청자와 그 제작기술이 유입되는 데에 청해진이 교역의 중심지가 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정부의 억상정책에도 불구하고 15,16세기에 들어오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상설화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이윤동기에 의해 자연스럽게 유발된 자연발생적인 현상이었다. 조선초기의 상공업억제책을 극복하고 나타난 15,16세기의 상업의 발달은, 조선초기의 경국대전적 사회체제를
은 “지금까지 발견된 선박의 규모로는 고려의 원양 항해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선박은 원양무역을 가능케 할 정도의 크기다”라고 밝혔다.
2006/8/29 동아일보
◆ 원과 교역 시 육로와 해로 두 가지가 모두 활용됨
◆ 해로를 통해 고려에 오는 경우, 개경에 이르는 관문인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