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세제도와 함께 배타적 소유권에 입각한 등기부상의 소유권자에게 과세부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였다. 따라서 일제가 조선에서 식민지 경제체제 확립의 기초작업으로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은 근대적 토지소유제도의 확립과 지세제도의 변화를 가져왔지만, 이것은 결국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광무개혁의 기치는 “구본신참”으로 이전과 다른 근대 기획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주요 활동
1. 양전사업을 통한 지계발행
2. 상공업 진흥 정책
한계점 - 화폐정책 실패, 왕실 주도의 이중적 형태
토지의 배타적 소유권 확립 : 근대적 속성
결부제→ 근대적지세제도
직접적 토지수탈은 없
근대적 조세제도가 널리 채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형성된 자본주의시대에는 간접세 증징을 수반한 소득세 중심으로 바뀌었다. 그 전형이 영국․미국이고, 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는 소득세에 중점을 두면서 일반거래세라는 새로운 형태의 유통세를 채용하였다. 한편 제2차
1. 부동산공시제도란?
우리나라의 근대적 부동산공시제도는 1910년부터 1924년까지 토지조사사업과 임야조사사업을 추진하여 토지대장과 임야대장을 작성함으로서 지적제도가 창설되고 이어서 등기제도가 정착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으로 36년에 걸친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후 제헌국회에
편입해 들이기 위한 기반조성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지 자본주의화를 위해서는 전근대적 토지소유관계를 폐지하고 자본주의에 적합한 토지소유관계 즉 근대적 토지소유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되는데, 식민지치고 이렇게 철저한 토지개혁을 단행한 제국주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