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 인간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배가 불러도) 먹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간은 사회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사회적 동물이다. 만약 자기 자신이 아무리 배가 불러도 자신의 옆의 사람이 그 계절에 혹은 그 사회에서 볼 수 없는 진기한 음식을 먹고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종교는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그가 관계하는 우주-자연과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에서 비롯하여 그 물음에 답변하는 과정으로써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물음의 깊이에는 인간 스스로에 대한 것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는 다름아닌 인간이 자기 자신과 우주에 대하여 질문하는
생각들은 절대적인 존재론적 독립성을 가진 신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세 번째, 신과 그의 피조물사이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으며, 피조물이 창조주가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창조되어진 존재는 영원히 피조물로 존재할 것이며 창조주는 영원히 창조주로 존재할
사회 전체가 독실한 기독교사회였고, 사람들의 죽음 관이 도상에 나타난 것과 같다면, 이 같은 견해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죽음이 신의 곁으로 가는 길이라면, 왜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냐는 의문을 제기 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반론은 십계명의 제 6조에 의거해
되고 신앙적 성숙을 이루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종교성의 표현이라는 점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⑶ '침묵'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문제
1) 신의 부재에 대한 물음과 인간의 태도 고찰
2) 인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종교적 해석
3) 종교인으로써 신의 침묵/부재를 어떻게 생각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