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서 평형의 힘을 견지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무의미시와 시론은 시적 성취와 획기적인 이론으로 시사적 의의를 크게 부여받은 한편 일부 독자와 연구자들에게는 공감을 얻지 못해 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모더니즘 미학과 독자적인 현대성에 근거한 시학으로 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시하는 정확한 언어임을 주장했다. 또한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중국의 한자 및 일본의 하이쿠 5·7·5의 17음(音)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본의 정형시
에 매료되어, 시의 주제와 형식 및 언어를 다양하게 계발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적 계발의 의도는 동양의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개인의 도덕성을
사상적 이미지들로 내면 세계를 표상했던 김종삼, <광화문에서>, <새> 등의 작품을 낸 신고전주의 경향의 천상병은 물론, 신진시인들의 시들에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1962년 결성된 “현대시” 동인들의 영향이 컸으며 이에 해당되는 시인으로는 정진규, 이승훈, 오탁번, 오세영, 이건청, 마종하, 이수
Ⅰ. 들어가며
1. 시대적 배경
한국 사회는 1970년대에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 돌입하여 여러 가지 사회변동을 겪게 된다. 경제의 급성장과 근대적인 산업 체제의 확립, 도시의 확대와 대중문화의 확산, 사회 구조의 변화와 생활 패턴의 다양화,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의 확대 등은 모두 산업화 과정
이 간극이 은폐되고 오히려 한 층 더 부추겨질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 역시도 일단은 잘 살아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정치적 근대화의 일시적인 포기가 일어나고 다만 경제 성장에만 힘쓰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의식적 진보가 없는 경제성장은 국민들의 가치관에 깊숙이 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