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사의 다른 부분에 대한 복원의 기초가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고조선의 중심지의 위치에 대한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서 보다 구체적인 자료가 전해지고 있는 낙랑군조선현의 위치에 대한 규명을 하고, 이어 위만 조선의 왕검성과 후기 고조선 수도의 위치를 살펴보겠다. 또한 고조
연물에까지 영혼을 인정함으로써 신의 관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타일러의 학설은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종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또한 원시인에게서 꿈이 그처럼 중대한 경험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두고 논란도 있었으나, 이원론(二元論)의 사고양식을 설명하는 양식
위만조선(衛滿朝鮮)과 구분하려는 의도에서 ‘고조선’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그 뒤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 용어가 널리 쓰였다. 지금은 단군이 건국한 조선과 위만조선을 포괄하여 고조선이라고 부른다.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기원전 2333년으로 전한다.
고조선의 북쪽 국경은《후한서》〈동이열전>‘예전’에 “예와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의 땅이였다”라고 기록된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에 예는 지금의 함경남도 일부와 강원도 지역을, 옥저는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를, 고구려는 평안북도와 중국의 길림성 남부 그리고 요령성 동부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