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흠모하여 1707년(숙종 33)에 생장지인 도천리에 도계서원을 세워 제향하고 있다.
그는 비록 후반생부터 문인활동을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풍요로워서 정철에 버금가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3권 2책으로 이루어진 『노계집』과 필사본 등에 실려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시가들
그러므로 강호가사는 사대부 가사와 서민 가사가 분류되었을 경우, 사대부 가사의 하위 항목으로 들어가게 된다. 강호가사의 세계가 바로 사대부 문학의 세계의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세계의 중요한 일면이 됨에 대해서는 아무 의심이 없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조선조 문인들의
Ⅰ. 노계박인로의 개요
1. 출생
1561(명종 16)~1642(인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는 무인(武人)으로도 활약하였다. 본관은 밀양이다.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이다.
영양 도천리(永陽 道川里 :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군 북안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조는
그려 낸가,
조화 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 / 수풀에 우난 새는 춘기를 못내 계워
소래마다 교태로다.
겨울이 지나고 새롭게 찾아오는 봄은 푸르고 화려하다. 새들조차 이러한 봄의 기운을 못 이겨 교태를 부린다. 이처럼 그는 작품 전반에 걸쳐서 신령스런 조물주의 솜씨인 봄의 경치를 찬미하
박인로와의 교유를 용납한 이유를 단순히 박인로가 그의 신분적 처지를 극복하려고 보인 남다른 ‘양반 의식’이나 ‘유가 의식’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 … 중 략 … ≫
Ⅲ. 누항사(노계박인로)의 작가
1. 출생
1561(명종 16)~1642(인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