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론의 이분법적인 붕당관 때문에 인재가 버려지는 경우가 생기고 극심한 당쟁으로 인해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풍토가 생기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때문에 정조는 정치의 표준을 바로 세우는 한편 두루 포섭하고 공평하게 등용하는 탕평의 이념을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삼았다.
3) 노론
노론의 이이명 사이에 이루어진 정유독대로 인해 정국은 일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정유독대란 숙종이 말년으로 갈수록 세자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소론의 지지를 받던 세자를 교체하고자, 연잉군을 지지하던 노론과 손잡고자 왕과 이이명 둘 사이에 이뤄진 비밀회담이다.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
◆ 본 론
정 조 와 노 론
정조가 추구한 것은 오로지 왕도정치의 구현이었다. 불과 11살 무렵, 노론(老論)에 의해 아버지(사도세자)가 죽는 것을 지켜 보아야 했던 정조이기에, 노론의 전횡에 휘둘려지는 조선을 다시 왕에 의해 다스려지는 왕의 나라로 되돌려 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조는
세조 때 역대 군주의 글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
정조는 규장각의 기능을 학문 연구 기관으로 확대
당색을 초월하여 학식이 높은 사람을 모아 우대
자신의 친위세력을 형성하면서 기존의 집권층 내부에서 인재를 골라 흡수하는 전략을 썼음
대표적인 학자로는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책장을 덮을 때에는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 역사학도임에도 정조 개혁정치의 좌절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다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소설이 지나치게 남인과 노론 갈등 양상으로만 기술됨으로써 시파와 벽파와의 갈등이라는 점은 다소 소홀히 다룬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