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칭호였으며, 청동기시대를 특징짓는 비파형 동검의 출토 분포로 중앙집권적 특성과 세력범위를 알 수 있다. 한편 농경의 발달과 함께 풍백․우사․운사를 두어 치수․농경 등을 주관하게 하였으며 사유재산의 성립과 계급의 분화에 따라 지배계급은 농사와 형벌 등의 사회생활을 주도하
. 송호정,「전근대사의 시대구분」, 『북한의 한국사인식 Ι 』, 한길사, 1990, p.21.
먼저, 임건상·백남운·한길언 등 흔히 노예론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단계설을 그대로 수용하여 삼국시대를 노예제 사회로 간주하고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를 봉건제 사회로 설정하였다.
대한 인식은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고려전기 역시 고려 정부는 자기 왕조 정통성의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삼한일통을 강조했다. 고려정부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연원이 삼한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았는데 그 전 시기의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인식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
고조선의 시작을 다룬 단군신화 또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본말에서는 단군신화의 내용이 기록된 옛 문헌들 중 비중 있게 거론되는 문헌들을 보며 단군신화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고 시대별로 나눠 단군신화에 대한역사적 인식이 어떻게 변천 되었는지 현재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