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중주의 불교
신라시대 당시에는 귀족주의 불교와 일반 서민불교 사이에 여전히 괴리가 있었다. 당시의 승려들은 민중의 무지가 석가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민중을 외면했다. 그러나 태종 무열왕 당시 등용된 원효는 불교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는 학승으로서 높이 평가
1.원효의 가계, 탄생, 수학, 및 출가
-원효의 출생연대는 삼국유사 원효 불기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인 서기 617년이고, 열반연대에 관하여는 고선사 서당화상탑비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6년 서기 686년이 되며, 그해 3월 30일 70세를 일기로 혈사에서 입적하였다는 것이다.
즉 원효가 생존하였던 연
원효의 사상은 이론적으로 그 당시의 불교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준다. 중관과 유식의 대립은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될 사상적 과제라고 여겨지고 있었으며 이것의 해결이 한국의 불교 사상가인 원효에 의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원효는 기신론(起信論)을 근거로 화쟁 사상
서론
원효의 대표적 저술로 간주되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新論疏)』와 『별기(別記)』의 내용을 기초 자료료 하여 원효의 대승 불교적 수행론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원효의 대승 불교적 수행론은 그의 일심(一心) 사상을 이론적 기초로 삼고 있으며, 그의 일심(一心) 사상 및 그의 각(覺) 사상과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 소?별기』가 가장 탁월하여, 예로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해동소』라는 별칭으로 존숭받아 왔다. 이번 역주본은 『기신론』과 『기신론 소?별기』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고, 1,100개가 넘는 상세한 각주를 제시함으로서 누구나 쉽게 대승의 정수와 원효의 사상을 만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