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별칭으로 고선대사, 만선화상이 있었으며, 구룡, 백부론주 등의 칭호도 있고, 입적한 뒤에는 고려시대 숙종에 의하여 화정국사라는 시호가 주어졌고, 고려시대의 대각국가 의천은 원효보살 또는 원효성자라는 존칭을 썼다.
원효불기조에 의하면, 원효는 태어나면서 총명하고 뛰어나서 스승을
종 불교 행사에는 참가하지도 못하는 수모를 당하였으나, 원효의 마음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결국 난해한 책으로 알려진 <금강삼매경>에 대한 소를 짓고, 그 강의를 위해서 다시 중앙의 불교계에 진출하여 자신의 불교사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리고 다시 혈사로 돌아와 수행하던 중 686년 입적하
보살이라고도 불린다. 북부 인도의 브라만교 출신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보살의 칭호를 얻었다고 한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대승사상을 종합적으로 개설한 것으로 평가받는데 대승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확립하고 대승불교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기 위한 노서로 심오하고 포괄적이라는 평가를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