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川 조 목
1. 머 릿 말
고려 말기의 신진 사대부들이 자기 역사에 대한 성찰과 현실 극복의 이념적 지표를 삼은 학문적 기반은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사회 개혁의 명분을 제공하였다.
조선 왕조의 개창이라는 역사적 변화에 대하여, 성리학을 공부하는 지식인들이 모두 찬동한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1. 창작배경
도산십이곡의 작자는 퇴계 이황으로, 퇴계가 명종 20년에 향리(鄕里) 안동(安東)에 물러가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던 때에, 자신의 심경을 읊은 12수의 연시조이다. 이 시조는 인간 속세를 떠나 자연에 흠뻑 취해 사는 자연 귀의 생활과 후진 양성
其三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봐도 녀던 길 알페 잇네
녀던 길 알페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고인이 성현을 지칭한다는 것은 우리들 모두 잘 안다. 그러므로 배운다는 것은 성현이 가던 길을 그대로 본받아 따르는 것이다. 진리는 내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견
㉣ 방황과 홀로서기
율곡은 나이 열 셋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이때부터 문장이 날로 성취되어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그런 명성과 기대 못지않게 그의 학문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과 갈등은 더욱 커져갔다. 자신을 알아준 문장가 송인(宋寅)에게 보낸 다음 글은 그의 이러한 갈등을 단적으
3) 고산구곡가가 후대에 미치는 영향
구곡관련 문화의 향유 즉 주자의 무이구곡을 동경하는 가운데 무이구곡도를 감상하거나, 차운시를 창작하고, 개별적인 구곡을 경영하는 일은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이러한 행보와 발맞추어 율곡의 고산구곡 역시 구곡관련 문화의 일부를 차지하며 독자적인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