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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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1. 창작배경
도산십이곡의 작자는 퇴계 이황으로, 퇴계가 명종 20년에 향리(鄕里) 안동(安東)에 물러가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던 때에, 자신의 심경을 읊은 12수의 연시조이다. 이 시조는 인간 속세를 떠나 자연에 흠뻑 취해 사는 자연 귀의 생활과 후진 양성을 위한 강학(講學)과 사색에 침잠(沈潛)하는 학문 생활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해 놓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16세기 후반에 나타난 이 작품은 조선전기에 나타났던 시조의 특징인 나라를 위한 충절,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주제의 변모를 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끝에 붙인 발문(跋文)을 통해 퇴계가 이 노래를 짓게 된 연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도산십이곡 발(陶山十二曲跋)
오른쪽의 은 도산노인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것을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동방의 가곡은 대체로 음란하여 족히 말할 것이 못 된다. 과 같은 류는 문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지만 ‘긍호방탕’하고 ‘설만희압’하여 더욱 군자가 숭상할 바가 아니다. 오직 근세 이별(李鼈)의 라는 것이 있어 세상에 널리 전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이것(한림별곡 류) 보다 좋다고는 하나 ‘완세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돈후(溫柔敦厚)’의 실이 적은 것이 애석하다. 노인이 본디 음률을 알지 못하나 오히려 世俗의 음악은 듣기 싫어할 줄은 알아서 한가히 지내며 병을 고치는 여가에 무릇 성정에 감동된 것을 매양 시로 나타낸 것이 있다. 그런데 지금의 시는 옛날의 시와는 달라서 읊을 수는 있어도 노래할 수는 없다. 만약 노래할 수 있도록 하자면 반드시 시속의 말로 엮어야 하는지라 대개 나라 풍속의 음절이 그렇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씨의 노래를 간략하게 모방하여 을 지은 것이 둘이니 그 하나는 뜻을 말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을 말한 것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아침 저녁으로 익혀 부르게 하여 의자에 기대어 듣게 하며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며 뛰게 한다면 아마도 비루한 마음을 씻어내 감발하고 융통하게 되어 노래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유익함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이글에서 도산십이곡의 창작동기를 파악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한림별곡은 음탕하고 교만에 차서 군자가 숭상할 바가 못 된다.
2) 이별육가는 세상을 불평, 풍자하려는 뜻이 있어서 온유돈후한 뜻이 부족하다.
3) 국문 시가는 한시와 달라서 노래 할 수 있다.
2. 주제 : 자연에 대한 흥취와 학문 수양의 자세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3. 기존 연구 자료
1) 도산십이곡에 나타난 낙천적 현실관